[O2/O2스토리, 그후]“엄마, 병 잊고 열심히 살려는 불효자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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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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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말기 택시기사의 존엄치료 추가 사례

한인철 씨는 1996년 12월 병상에 누워 있던 자신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왼쪽)와 자신의 답장(가운데)을 15년째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오른쪽 인쇄물은 지난달 25일 김유숙 교수가 한 씨에게 ‘존엄치료’를 시행한 뒤 정리한 문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인철 씨는 1996년 12월 병상에 누워 있던 자신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왼쪽)와 자신의 답장(가운데)을 15년째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오른쪽 인쇄물은 지난달 25일 김유숙 교수가 한 씨에게 ‘존엄치료’를 시행한 뒤 정리한 문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인철아, 살아만 다오. 인철아, 이 고통을 참고 이겨야 한다. 너는 살아야 한다. 엄마의 이 울부림(울부짖음)을 너는 알고 있느냐. 엄마를 지켜다오. 힘을 다오.(후략)”

“엄마 말을 안 듣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엄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미운 정이 더 무섭대….(후략)”

1996년이 저물어가던 무렵 오토바이 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던 한인철 씨(33) 모자가 주고받은 편지입니다. 한 씨는 고등학교 2학년 추석에 당한 사고로 3번의 뇌수술을 받으며 1년여의 시간을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편지는 ‘보물 1호’입니다. 겉으로는 어머니께 짜증을 부리고 심한 말도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을 홀로 키워낸 어머니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씨에겐 어머니의 은혜를 갚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택시운전을 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입니다. 이미 뇌까지 암세포가 퍼졌습니다. 지금은 항암치료도 중단하고 한국원자력병원에서 완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5일 김유숙 서울여대 교수(교육심리학)에게서 ‘존엄치료’를 받았습니다.(존엄치료를 다룬 지난달 19일자 커버스토리 말미에 소개했던 ‘폐암 말기의 33세 미혼남성’이 바로 한 씨입니다) 김 교수는 그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9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를 A4용지 3장 분량의 문서로 정리했습니다.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15년간 가슴에 품고 살던 한 씨로서는 어머니께 남기는 마지막 편지인 셈입니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존엄치료 과정에서 정리된 한 씨의 삶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살아가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고2 추석 때 오토바이 사고로 1년 넘게 학교를 못 가고 입원해 있었다. 학교는 그때부터 안 갔지만 1년 후에 졸업장은 받았다. 열여덟에 입원해서 스무 살 때 퇴원했으니까 병원에 꽤 오래 있었다. 그동안 뇌수술도 세 번이나 받았다. 뼈를 잘라 내고 인조 뼈를 끼워 넣었지만 염증 같은 게 생겨서 다시 빼기도 했다. 그때 한 번 생명의 위기를 넘긴 셈이다. 그때 난 어려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엄마가 쓰신 편지를 보고 의사가 장례식을 준비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가 편지를 쓰신 지는 한 15년쯤 되었다. 마음이 좀 그래서 한 세 번밖에 안 읽었다. 하지만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신 자신에 대해 소중한 사람이 알아주거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이 되니까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아직은 친구들이 날 어떻게 기억해 줬으면 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싫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을 애처롭고 불쌍한 모습으로 보겠지만 난 그걸 원하지 않는다. 우리 모자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난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밖에 안 나온다. 엄마를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 죄인’ 같다. 그래도 난 병을 잊고 열심히 살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인생에서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왜 그것은 당신에게 중요합니까?

내가 생활하면서 ‘잘한 역할이다’라고 할 만한 건 잘 모르겠지만, 올해 3월까지 회사에 꾸준히 다녔다.(한 씨는 지난해 10월 암 진단 이후 병가를 냈고, 올해 3월 퇴직했다) 미군부대 안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는 건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실질적으로 고충이 많다.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듯이 나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이겨내고 8년간 회사생활을 했다.

당신이 이룬 가장 중요한 성취는 무엇입니까? 무엇에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의사고 박사고 경찰이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를 뿐이지 모두 똑같다. 그들과 하는 고민이 조금씩 다를 뿐이었으며 나도 내 상황에서 생기는 고민들을 모두 이겨냈다. 친구들의 경우 어떤 친구는 결혼해서 가정도 갖고 또 출세한 친구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걔네들은 그렇게 살고 나는 뭐 조금 다르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제 식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당신의 희망과 바람은 무엇입니까?

최근 주위의 누님(이종사촌 누나)들이 유방암에 걸리거나 돌아가셔서 나도 어머니도 마음이 많이 힘들다. 그래도 내가 중학교 때 유방암에 걸리고 그걸 극복해 내신 엄마가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 노환이고 많이 아프시지만 엄마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까 엄마도 조금 그런 부분에 의연해지면 내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라든지,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내게 직계가족은 내가 초등학교 때 이혼하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투자한 일흔이 넘은 어머니밖에 안 계시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몇 자 적어둔 게 있다. 남기고 싶은 말은 휴대전화에 저장한 그 글로 대신하고 싶다.

‘불쌍한 울 오마니. 언제나 나한테는 자기가 다 잘못했다는 울 오마니∼. 불쌍한 어머니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인 것 같다. 오전에는 파출부를 하시고 오셔서는 부엌에서 찬밥 한 숟가락 급하게 드시고서는 또다시 클럽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병에 걸리셨어도 자식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가시는 어머니. 그런 당신의 모습을 지켜만 봐야 되는 전 진정 불효자입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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