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EMI 간판스타 사이먼 래틀, 비보를 듣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4일 03시 00분


■ 英 음반사 EMI, 유니버설-소니에 분할 매각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녹음 중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앞)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EMI가 200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여러 음반 중 가장 많은 투자와 정성을 기울였다는 평을 받았다. 동아일보DB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녹음 중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앞)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EMI가 200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여러 음반 중 가장 많은 투자와 정성을 기울였다는 평을 받았다. 동아일보DB
124년 전통의 영국 음반사 EMI가 분할 매각됐다는 소식이 13일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음반 사업부문은 프랑스 미디어그룹 비방디 산하 유니버설뮤직그룹이, 음원 지식재산권을 갖는 출판 부문은 소니가 인수할 예정이라는 내용. 이렇게 되면 클래식 레이블은 ‘거대 공룡’ 유니버설과 소니 단 둘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틀 뒤인 15일 EMI 관계자는 “사이먼 래틀이 아시아 투어 중에 비보를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인 래틀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연주를 마친 뒤 15, 16일 내한공연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영국 리버풀 태생인 래틀은 EMI클래식의 ‘간판스타’. EMI 관계자는 “래틀이 베를린필에 부임한 뒤 초반 갖은 공격을 받을 때도 EMI는 모국의 지휘자를 한껏 지원했다. 래틀이 70종이 넘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레코딩할 수 있었던 것은 EMI의 전적인 지원 덕분인데 쟁쟁한 지휘자들이 즐비한 유니버설에서 이전처럼 래틀을 밀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MI 소속 아티스트 가운데 이번 매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는 이런 ‘레이블 파워’가 남아 있는 마지막 보루다. 음악평론가 박제성 씨는 “영화나 대중음악 등 다른 장르와 달리 클래식 음악은 일반인이 연주의 질을 평가하기 어렵다. 들었을 때 훌륭하다 아니다를 직접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레이블에 기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설뮤직은 예전부터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도이체그라모폰(DG) 데카 등 쟁쟁한 레이블을 보유해 왔다. 음악팬들은 불황에 허덕이는 음반시장에서 EMI 레이블이 살아남을 것인지, 소속 아티스트들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지 등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EMI와 유니버설 측은 모두 “EMI라는 레이블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EMI도 이 하위 레이블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DG는 ‘정통’ 클래식만을 고수하는 가장 보수적인 레이블로 꼽힌다. ‘빨간 딱지’ EMI와 ‘노란 딱지’ DG는 클래식 레이블의 양대 산맥이었다. 크로스오버를 많이 냈던 필립스는 데카에 합병됐다. 데카는 오페라와 성악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왔다.

EMI에서 8장의 음반을 낸 장한나. 동아일보DB
EMI에서 8장의 음반을 낸 장한나. 동아일보DB
EMI는 본사와 인터내셔널 계약을 한 한국인 아티스트가 다른 레이블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친한(親韓)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아오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EMI가 내세우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대표 격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무 장에 가까운 음반을 내놓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장한나, 피아니스트 임동혁도 EMI와 인터내셔널 계약을 맺었다. 유니버설에서 인터내셔널 계약이 체결돼 있는 한국 아티스트는 지휘자 정명훈뿐이다.

래틀을 비롯한 EMI 아티스트들의 계약 유지 전망에 대해 유니버설 관계자는 “매각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EMI 측은 “유니버설이 레이블마다 성격이 겹치는 아티스트를 교통정리하지 않겠느냐. 아티스트로서는 힘든 시간을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라 장의 경우 유니버설에 힐러리 한과 조슈아 벨이 있고, 래틀은 러시아의 대표주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과,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는 안드레아스 숄과 경쟁해야 한다. 중국 피아니스트 윈디 리도 위상이 애매해진다. 데뷔 앨범을 DG에서 낸 뒤 EMI로 옮겼는데 다시 유니버설로 들어갈 것인지, 경쟁 상대인 랑랑이 소속된 소니로 갈 것인지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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