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세상이 모두 도적인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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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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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 박준은 그림 제공 포털아트
청맥, 박준은 그림 제공 포털아트
조선시대 전국 곳곳에는 공직자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가 많았습니다. 고을 수령이 바뀔 때마다 관례처럼 공덕비를 세우곤 했는데 백성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보다 부정부패에 몰입하던 수령이 자신의 청렴을 위장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세우게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 입장에서는 돌을 던지고 똥물을 끼얹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공덕비까지 세워야 했으니 그들의 마음에 맺힌 화를 무슨 수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과천현감(果川縣監)은 탐관오리의 송덕비로 유명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날 아침 송덕비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이 모인 가운데 비석에 덮인 흰 막을 걷어내니 거기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今日送此盜(오늘 이 도적놈을 보내노라)’

자신의 공덕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을 거라 믿었던 현감은 비문을 보자마자 사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현감은 곧이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방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이 서둘러 지필묵을 대령하자 현감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일필휘지로 이렇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明日來他盜(내일 또 다른 도적이 올 것이다) 此盜來不盡(이 도적은 끝없이 올 것인 즉) 擧世皆爲盜(세상이 모두 도적인 탓이다)’

현감의 표현에서 당대의 썩어빠진 공직 풍조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대간, 감찰, 암행어사 제도를 두고 있었지만 공직비리와 부정부패는 밑으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입법 사법 행정으로 3권이 분리되어 서로를 견제하고 제4부라 일컫는 언론까지 숱하게 언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부정부패와 비리의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또한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월의 흐름을 따라 지능적 관습적 담합적으로 대담해지고 있습니다. 기강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공직자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고 있으니 진정 세상에는 도적만 있는 걸까요.

울며 겨자 먹기로 송덕비를 세운 백성들은 수령이 떠난 뒤에 그것에다 재를 뿌리거나 똥칠을 하거나 아예 글자를 지우고 덧새겨 악행을 고발하는 비문으로 고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천현감처럼 악질적인 탐관오리만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표적인 송덕비로 토정 이지함을 기리는 영모비(永慕碑)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선조 때 아산현감을 지낸 이지함은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거지들을 수용해 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백성을 사리사욕의 발판으로 삼는 파렴치한 존재가 있는가 하면 의로운 행동으로 백성을 섬겨 후세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라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자랑스러운 호국 영령이 있습니다. 그들을 마음 깊이 기려야 할 유월에 도처에서 부정부패와 비리가 터져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호국 영령이 아니라 후안무치한 탐관오리의 영령을 위로하는 사람들, 눈부신 유월의 녹음 앞에서 깊이깊이 머리 조아리는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남이 아니라 나, 우리 모두 마음의 거울에 자신의 송덕비를 비춰봐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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