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왕오천축국전 발견된 장경동… 불상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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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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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요충지 ‘둔황의 영광’ 생생 체험

중국 둔황에서 출토된 7∼10세기 ‘천마 무늬 벽돌’(왼쪽)과 막고굴 329굴의 연꽃 비천무늬 천장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중국 둔황에서 출토된 7∼10세기 ‘천마 무늬 벽돌’(왼쪽)과 막고굴 329굴의 연꽃 비천무늬 천장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당나라 수도 장안(지금의 중국 시안). 이곳에서 시작한 실크로드는 둔황과 누란을 거쳐 서역으로 이어졌다. 둔황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4세기부터 이미 대상(隊商)무역으로 영화를 누렸던 곳. 경제적 부가 축적됨에 따라 이들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본떠 무수히 많은 석굴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이를 막고굴(莫高窟) 또는 천불동(千佛洞)이라고 한다. 공식 명칭은 막고굴이다. 막고굴이라는 명칭은 수나라 때 개착된 423굴에 전하는 ‘막고굴기’를 통해 확인됐다. 막고굴은 사막 높은 곳에 있는 석굴이라는 뜻이다. 당시 막(莫)이라는 한자는 사막의 막(漠)자로 통용되기도 했다. 이는 위대하고 성스러운 석굴이란 의미다. 천불동은 무수히 많은 불상과 불화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막고굴은 불교문화의 보고이자 동서 문물교류의 상징 공간이다. 둔황석굴 내부의 수많은 불상과 조각 벽화들을 보면 일대 파노라마가 아닐 수 없다.

723년 인도로 떠난 신라 승려 혜초는 727년 둔황을 거쳐 장안으로 돌아와 서역기행을 마쳤다. 그러곤 장안에서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완성했다. 1100여 년이 지난 1908년, 둔황 막고굴 17호굴 장경동(藏經洞)에서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됐다. 헤초가 장안에서 썼다는 이 글이 어떻게 둔황에서 발견된 것일까.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을 들고 둔황을 다시 다녀온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해선 기록이 없어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둔황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이 초본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혜초는 장안으로 돌아오기 전 둔황에 들러 그동안 메모해 오던 왕오천축국전을 초본 형식으로 간략히 마무리했다. 이 초고를 둔황에 남겨 놓고 장안에 들어와 제대로 된 여행기를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장안에서 작성한 완성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둔황과 왕오천축국전이다. 이를 웅변이라도 하듯 전시장에는 둔황의 석굴 모형(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 장경동, 275호)을 비롯해 각종 불상과 불화를 선보인다. 천마 봉황 용 사자를 새긴 벽돌도 눈길을 끈다. 막고굴의 장대함과 화려함을 담은 영상과 사진도 볼 만하다. 실크로드 요충지 둔황의 영광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왕오천축국전만 3월 17일 프랑스로 돌아간다. 1300년 만의 나들이 치고는 너무 짧은 나들이. 서두르지 않으면 왕오천축국전을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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