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044>齊宣王이 問曰文王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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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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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왕·하’ 제2장은 제나라 宣王(선왕)과의 대화이다. 제나라 선왕은 자신이 사냥을 하며 武藝(무예)를 익히는 동산에 대해 백성이 너무 크다고 불평한다는 사실을 알고, 문왕이 사방 70리의 큰 동산을 경영한 것에 비하면 자신의 동산은 크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맹자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했다.

제선왕은 ‘양혜왕·상’ 7장에서, 齊나라 桓公(환공)과 晉(진)나라 文公(문공)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제후이다. 제선왕은 춘추시대에 제나라가 위세를 떨쳤던 일을 추억하고 자기 나라가 천하를 다시 制覇(제패)하게 되길 기대했지만 맹자는 백성을 보살펴야만 정당성을 지닌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서도 제선왕은 천하 制覇의 가능성이 있는 군주로서 큰 동산을 경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맹자는 그 논리를 부정한다.

文王은 주나라를 사실상 건국한 성군이다. 옛 군주는 사철의 농한기에 사냥을 하여 무예를 익히되 곡식 심는 농토와 채소 가꾸는 場圃(장포)에서는 사냥을 하지 않고 빈 땅에 동산을 가꾸었다. 그러나 70리 동산은 너무 큰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문왕이 은나라 말기에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한 뒤의 일이라 보기도 한다.

有諸의 諸는 之와 乎의 결합이다. 한문은 대개 時制(시제)를 나타내는 語辭(어사)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문맥에 따라 시제를 추정해야 한다. 傳은 옛 책을 가리킨다. 若是는 ‘이와 같이’이다. 猶는 ‘그래도, 오히려’의 뜻이다. 以爲는 ‘…라고 여기다’로, 爲는 판단동사이다.

옛 군주들은 자신을 성군에 견주고는 했지만 保民(보민)과 與民同樂(여민동락)의 이상을 실현한 군주는 많지 않다. 이 간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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