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039>此는 無他라 不與民同樂也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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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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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왕이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與民同樂(여민동락)이라는 매우 중요한 성어가 ‘양혜왕·하’ 제1장의 여기에 나온다.

맹자는 제나라 왕이 세속의 음악을 대단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세속의 음악이든 선왕 이래의 옛 음악이든 獨樂樂(독악락·홀로 음악을 연주하여 즐김)보다는 與人樂樂(여인악락·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여 즐김)이 더 즐겁고 與少樂樂(여소악락·적은 수의 사람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여 즐김)보다는 與衆樂樂(여중악락·많은 수의 사람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여 즐김)이 더 즐겁다는 점을 제나라 왕이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이어서 맹자는 왕이 홀로 음악을 즐기고 백성들과 함께하지 않을 경우, 백성들이 그 음악 소리를 듣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길 ‘우리 왕께서 음악 연주하시길 좋아하심이여! 어찌 우리로 하여금 이 곤궁의 극한에 이르게 해서 부자가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처자가 헤어져 흩어지게 만드는가’ 하리라고 했다. 또한 왕이 홀로 사냥을 즐기고 백성들과 함께하지 않을 경우, 백성들이 왕의 성대한 행차 광경을 보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길 ‘우리 왕께서 사냥하시길 좋아하심이여! 어찌 우리로 하여금 이 곤궁의 극한에 이르게 해서 부자가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처자가 헤어져 흩어지게 만드는가’ 하리라고 했다.

왕이 음악을 좋아하여 성대한 연주회를 벌이고 사냥을 좋아하여 화려한 행렬을 지을 때 백성들은 어째서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자신들의 困窮(곤궁)이 極限(극한)에 이르렀다고 원망하게 되는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홀로 그 자신만 즐기고 백성을 救恤(구휼)하지 않기 때문이다.

與民同樂이야말로 정치의 근본이념이다. 그리고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는 백성을 구휼하여 곤궁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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