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익어가는 가을… 산을 등지지 않고 걷는 100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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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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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걷기

우이령(소귀고개)에서 바라본 도봉산 오봉. 기묘한 형상의 5개 바윗덩어리가 잇달아 우뚝우뚝 서 있다. 다섯 형제가 거대한 바위를 공깃돌 가지고 놀듯 힘자랑 하면서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예로부터 산꾼들은 우이령에서 바라보는 오봉을 으뜸으로 쳤다. 소귀처럼 길게 늘어진 고갯길 우이령. 경기 양주사람들이 한양 장마당에 채소와 땔감 등을 팔러 오가던 길. 느릿느릿 나무늘보처럼 걷다 보면 가슴 속에 맺혔던 온갖 울혈들이 스르르 사라진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우이령(소귀고개)에서 바라본 도봉산 오봉. 기묘한 형상의 5개 바윗덩어리가 잇달아 우뚝우뚝 서 있다. 다섯 형제가 거대한 바위를 공깃돌 가지고 놀듯 힘자랑 하면서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예로부터 산꾼들은 우이령에서 바라보는 오봉을 으뜸으로 쳤다. 소귀처럼 길게 늘어진 고갯길 우이령. 경기 양주사람들이 한양 장마당에 채소와 땔감 등을 팔러 오가던 길. 느릿느릿 나무늘보처럼 걷다 보면 가슴 속에 맺혔던 온갖 울혈들이 스르르 사라진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물은 힘차게 운동하고 산은 고요히 머물러 있는 것이 북한산의 멋진 경치이다.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역시 멋지다. 날이 맑아도 멋지고 날이 흐려도 멋지다. 산도 멋지고 물도 멋지다. 단풍도 멋지고 바위도 멋지다. 멀리 조망하여도 멋지고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멋지다. 부처도 멋있고 스님도 멋지다. 비록 안주는 없어도 탁주라도 멋있다. 절대가인은 없어도 초동의 노래라도 멋지다.’(이옥·1760∼1812·‘북한산기행’…심경호의 ‘산문기행’에서)

북한산 몸통엔 굴렁쇠 2개가 빙 둘러 걸쳐 있다. 훌라후프처럼 위아래에 각각 하나씩 있다. 위쪽은 가슴 어깨 잔등을 둥글게 밟고 가는 북한산성 길이다. 아래쪽은 북한산 발목언저리를 에두르는 둘레길이다.

윗길(12.7km)은 세발자전거 바퀴만 하고, 아랫길(43.8km)은 10t 트럭 ‘왕발통’만 하다. 위는 전문 산꾼들이 즐겨 다니고, 아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아주머니들이 느릿느릿 걷는다. 윗길은 울퉁불퉁 험하고, 아랫길은 호젓하고 평평하다.

나뭇가지 끝에서 아슬아슬 쉬고 있는 잠자리. 가을이 익고 있다.
나뭇가지 끝에서 아슬아슬 쉬고 있는 잠자리. 가을이 익고 있다.
산성 성곽 길엔 백운대(해발 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 노적봉(716m) 문수봉(715.7m) 보현봉(700m) 영봉(604m) 비봉(560m) 형제봉(462m) 등이 손에 잡힐 듯 병풍을 두르고 있다. 하지만 성곽길에선 북한산 바깥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산 안쪽만 보인다. 희뿌연 바위병풍은 아름답지만 그 골짜기 안은 답답하다. 산성 골짜기는 딱 200만 평(6.6km²) 넓이다.

둘레길은 저잣거리와 산문의 경계에 있다. 북한산 밑동 바깥에서 크게 원을 그린다. 산자락 비탈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가는 길이다. 밭두렁길이 있고, 아파트 뒷길도 있다. 계곡을 따라 가기도 하고, 호젓한 숲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네 골목길을 이곳저곳 해찰하며 가기도 한다. 때로는 군부대 앞 아스팔트 인도를 따라 따가운 볕을 받으며 가야 한다. 조선시대 내시묘역도 지난다.

콸콸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금세 아이들 떠드는 소리, 대문 삐꺽 여닫는 소리, 왈왈 애완견 짖는 소리가 이어진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매콤 짭조름한 먹자골목을 지나면 곧바로 향긋한 생풀냄새 가득한 숲 속으로 들어선다.

한쪽 겨드랑이는 왁자한 서울 저잣거리이고, 다른 한쪽 겨드랑이는 고요한 북한산자락이다. 걷는 이들은 한 번은 북한산을 보고 웃고, 한 번은 저잣거리에 귀를 쫑긋한다.

태풍 곤파스에 여기저기 쓰러진 큰 나무들. 뜻밖에도 가녀린 나무나 여린 풀들은 끄덕없이 살아있다.
태풍 곤파스에 여기저기 쓰러진 큰 나무들. 뜻밖에도 가녀린 나무나 여린 풀들은 끄덕없이 살아있다.
북한산은 걷는 이들을 보고 소웃음을 웃는다. 북한산은 늘 가부좌를 틀고 듬직하게 앉아 있다. 서울의 아파트 숲은 빽빽하고 삐죽하다. 하지만 아무리 높아도 북한산 아래에 있다. 둘레길은 마을뒷산 올망졸망한 묘들과 동네를 가르는 가르마길이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이다. 경계에는 늘 꽃이 핀다. 둘레길에서 보는 서울은 아름답다. 북한산은 넓고도 웅숭깊다.

‘늦은 밤 북한산에 오르면/서울이 가라앉는다/오르는 높이로 가라앉는다//벗어놓은 속옷/물에 잠기듯/좌우로 흔들리며 가라앉는다//더러 가라앉지 못한 불빛이/먼지처럼/별이 되어 떠돈다’
(유담의 ‘늦은 밤 북한산에 오르면’에서)

북한산 둘레길은 13개 구간 43.8km 거리이다. 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2시간20분(북한산관리공단 추산). 전문가가 아니라면 하루로는 무리이다. 굳이 그렇게 걸을 필요도 없다. 구간별로 쪼개가며 일주일이나 한 달 간격으로 쉬엄쉬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디서 시작하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간부터 시작하면 된다.

가지런하게 잘 가꿔진 둘레길.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걷기에 부담이 없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가지런하게 잘 가꿔진 둘레길.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걷기에 부담이 없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이삼일에 걸쳐 전 구간을 한 번에 걸을 생각이라면 우이령길에서 시작하는 게 편리하다. 우이령길은 사전 예약을 해야 할뿐더러, 예약을 하더라도 오후 2시 이후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왼쪽 ♣탐방예약제 참조). 처음에 우이령을 통과해 놓으면 느긋하게 둘레길을 걸을 수 있다. 나중에 우이령길 입구에서 막히는 낭패를 피할 수 있다.

우이령(소귀고개)길은 북한산 둘레길의 꽃이다. 서울 강북 우이동과 경기 양주 교현리를 잇는 길이며 도봉산과 북한산을 가르는 길이다. 둘레길을 시계 방향으로 돌려면 양주교현탐방센터에 탐방 예약을 하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생각이면 우이탐방지원센터에 예약을 해야 한다.

소귀고개는 호젓한 흙길이다. 서너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다. 원래는 작은 샛길이었으나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뚫었다. 1968년 1.21사태 때 김신조가 넘어왔던 길로도 유명하다. 그 이후 41년 만인 올해 문이 열렸다.

소귀고개는 벌써 가을이 익고 있다. 자주색 싸리꽃망울이 우우 올라오고 있다. 진홍빛 물봉선꽃이 한창이다. 양쪽 길가엔 국수나무가 치렁치렁 머리채를 늘어뜨리고 있다. 우렁우렁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소귀고개는 가곡 ‘바위고개’(이흥렬·1907∼1980·작사 작곡)의 배경이기도 하다. 가곡에 나오는 그 떠꺼머리총각은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오봉(660m)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는지도 모른다.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 오봉은 보면 볼수록 신묘하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북한산 둘레길은 문을 열자 마자 태풍 곤파스에 한 방 맞았다. 수십 년 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뒹굴었다. 생때같은 소나무 잣나무 아까시나무들이 목숨을 다했다. 벌러덩 넉장거리로 누웠다. 푸른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길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허리가 가는 나무들은 거의 살아남았다. 바람에 맞서지 않아서일까. 키 작은 풀들도 끄떡없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서 일까. 살아남은 키 큰 나무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렇다. 그들은 뿌리를 깊이 내려 살아남았다. 그렇게 태풍 곤파스에 맞설 수 있었다. 북한산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까. 억만 년 짙푸른 그 산 둘레를 오늘도 서울 저잣거리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걷는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북한산 둘레길 가려면

▼우이령길 △우이탐방지원센터(지하철 수유역 3번 출구→120, 153번 버스 종점 하차→도보 30분→전경대초소→우이탐방지원센터)

△교현탐방지원센터(지하철 구파발역 1번 출구→704, 34번 버스로 석굴암 정류장 하차→편의점 왼쪽길 직진→교현탐방지원센터)

▼충의길 △사기막 입구(지하철 구파발역 1번 출구→704번 버스 사기막골 정류장 하차→도보 5분)

▼효자마을길 △효자동공설묘지(지하철 구파발역 1번 출구→704번 버스 효자동마을금고 하차→도보 5분)

▼내시묘역길 △전차부대앞(지하철 구파발역 1번 출구→7211번 버스 입곡삼거리 하차→도보 5분)

▼마실길 △진관생태다리앞(지하철 구파발역 3번 출구→7724번 버스 진관외동 종점 하차→도보 3분)

▼하늘길 △불광근린공원(지하철 연신내역 4번 출구→7211번 버스 독박골 하차→도보 7분)

▼성너머길 △사자능선하단(지하철 길음역 3번 출구→7211번 버스 구기터널, 한국고전번역원 정류장 하차→도보 2분)

▼평창마을길 △형제봉공원지킴터(지하철 길음역 3번 출구→7211번 버스 북악파크 하차→도보 15분)

▼사색의 길 △정릉탐방안내소(지하철 길음역 3번 출구→143, 171, 110B번 버스 종점 하차→도보 5분)

▼솔샘길 △강북구청자연생태체험장(지하철 길음역 3번 출구→1014, 1114번 버스 종점 하차)

▼흰구름길 △이준열사묘소 앞(지하철 수유역 1번 출구→강북01번 버스 통일교육원 하차)

▼순례길 △솔밭공원(지하철 수유역 3번 출구→101, 120, 153번 버스 덕성여대입구 하차→길 건너 도보 5분)

▼소나무숲길 △우이계곡 우이령입구(지하철 수유역 3번 출구→101, 120, 130, 153번 버스 종점 하차→로터리방향으로 도보 2분)
♣ 우이령길 탐방예약제=우이령길은 탐방예약을 해야 걸을 수 있다. 하루 1000명 제한(우이 500명, 교현 500명). 예약은 15일전 오전 10시부터 하루 전 17시까지 가능하다. 예약 탐방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오후 2시가 지나면 예약자일지라도 탐방이 불가능하다. 예약은 인터넷(bukhan.knps.dr.kr)으로 받는다. 65세 이상 노령자나 장애인, 외국인은 양쪽 방향에서 각각 하루 100명씩 전화예약도 받는다. 우이탐방지원센터(02-998-8365), 교현탐방지원센터(031-855-6559). 인터넷 예약자는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북한산 둘레길 안내=02-900-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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