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동양의 고전에 비친 우리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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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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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에서 동양을 만나다/김선자 지음/344쪽·1만5000원/웅진지식하우스

꿈에 장자가 나비가 되어 펄럭거리며 꽃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꿈에서 깨어 보니 자기는 장자였다. 내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내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는 ‘세상을 채우는 모든 것은 영혼을 지니고 있고 영원히 산다’는 신화적 사유 배경을 가진다. 장자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면 그의 사상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사진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꿈에 장자가 나비가 되어 펄럭거리며 꽃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꿈에서 깨어 보니 자기는 장자였다. 내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내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는 ‘세상을 채우는 모든 것은 영혼을 지니고 있고 영원히 산다’는 신화적 사유 배경을 가진다. 장자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면 그의 사상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사진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쌀 항아리엔 쌀 한 됫박도 남아있지 않고/고개 돌려 바라보니 횃대엔 걸려 있는 옷 한 벌도 없다/칼 뽑아들고 동문 밖으로 나가려 하니/집에 있는 아이 엄마가 옷깃을 부여잡고 흐느껴 운다”

한나라 말기 중국 민가(民歌)인 ‘동문을 나서며(東門行)’의 한 대목이다. 굶고 있는 아내와 자식을 보다 못해 남의 것이라도 빼앗으려 칼을 들고 나서는 가장을 아내가 말린다. 수천 년 전의 노래지만 어디선가 들은 듯한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들과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동아시아 사상과 정신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쳐온 고대 중국 문헌들이 기록될 당시의 시간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는 애니메이션 ‘뮬란’의 기원이 북조시대 민가 ‘목란(木蘭)’이라는 사실 등을 예로 들며 오늘날 우리의 삶도 선인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가운데 이뤄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인(聖人) 이미지로 기억되는 공자 역시 창고지기 노릇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책벌레에 음악마니아였다는 걸 지적하며 고서 속 근엄한 인물들의 인간적 면모도 끌어낸다.

저자는 먼저 인물들의 생전 환경을 보여준 다음 그들의 지식 세계와 문헌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저잣거리에서 창고지기를 한 공자의 책에는 ‘인물’이 주로 나오고, 숲 속에서 산 장자는 책에 나무나 물고기 등 자연의 생물을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으로 등장시켜 사전 설명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가오도록 한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에 대해서는 사기를 쓰게 된 배경을 먼저 들여다봤다. 저자는 사마천이 불의를 보고 굽히지 않는 지식인이었으며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효자였다고 설명한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한 한나라 장군 이릉을 변호한 죄로 궁형(宮刑)에 처해진 사마천은 치욕을 버티고 살아남는다. 아버지의 유언이자 자신의 직무인 ‘사기’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분노를 창작으로 표출한 사마천을 진정한 지식인의 전형으로 평가한다.

중국 문학작품들의 역사적 배경도 설명했다. 치열한 현실비판과 환상적 요소들이 어우러진 명나라 시기 장편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허구적 글을 쓰는 게 드물었던 시대에 이 같은 작품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탁오와 김성탄이라는 두 문인이 있었다. 이탁오는 기존 지식인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선인들을 맹신하는 행태를 비난하다 ‘혹세무민’의 죄로 갇혀 자살했고 수호전을 높게 평가했던 김성탄은 사형을 당하기 직전 관리에게 야유를 퍼붓는 유서를 남겼다. 저자는 이 두 광인(狂人)이 있어 소설이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고 말한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 조정은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본떠 관우의 이름으로 유화책을 쓴 결과 몽골족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문학을 외교에 활용한 사례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중국 전역에서 관우 사당을 찾을 수 있다. 시대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그 시대들이 겹쳐 어떻게 역사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고전 속 이야기와 인물들을 통해 저자는 끊임없이 현재와 과거를 비교한다. 읽다 보면 들어본 듯한 이야기도 있고 낯선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수천 년 동안 우리가 들어온 이야기들의 원형을 찾아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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