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미운 자식 , 예쁜 손자… 3대 걸친 애증의 변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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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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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했다. 타자(他者)를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아봐야 한다고. 서로가 타자일 수밖에 없는 남녀는 아무리 사랑해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둘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는 ‘타자가 된 나’를 실현한다. 아이는 분명 내가 아닌 타자지만 나의 형상을 지녔다.

하지만 세상에는 ‘타자가 된 나’를 못견뎌 내는 부모도 많다. 현실의 나를 용납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아이가 대신 이루라고 밀어붙이거나 심지어 자신을 닮은 아이를 미워한다. 이런 역설적 거울효과는 조부모와 손자손녀의 관계에서 다시 역전된다. ‘타자가 된 나’를 너그럽게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3대에 걸친 이런 애증의 드라마를 그린 연극이 서울 대학로에서 나란히 공연 중이다. 3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엘리모시너리’(이동선 연출)와 이랑씨어터에서 무기한공연에 들어간 ‘늙은 자전거’(안경모 연출)다.

미국 극작가 리 블레싱 원작의 번역극인 ‘엘리모시너리’는 도로시아(이정은) 아티(김수진) 에코우(김신혜) 여성 3대의 슬픈 가족사를 담담히 그려낸 추상화다. 이들 여성 3대의 비극은 비범함에서 비롯한다. 남성우월사회에서 자신의 비범함을 펼쳐낼 수 없었던 도로시아는 주술적 연구에 몰두하는 ‘마녀’가 되는 방식으로 자아실현을 도모한다.

비범한 기억력을 지닌 아티는 그런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실현해줄 ‘실험용 쥐’로 키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가출한다. 어머니와 달리 객관성을 신봉하는 과학자가 된 아티는 어휘력이 풍부한 딸 에코우를 낳는다. 에코우의 양육방식을 놓고 도로시아와 아티는 다시 충돌한다. 에코우는 결국 엄마에게서 버려지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에코우는 그런 엄마의 관심을 붙잡기 위해 단어철자 맞히기 전국대회에 출전한다. ‘타인을 돌보는’ 이란 뜻의 엘리모시너리(eleemosynar1y)는 그 대회 결승전에 출제된 마지막 단어이자 그들 여성 3대의 불화를 치유할 열쇠다.

이만희 작가의 신작을 무대화한 ‘늙은 자전거’는 고집불통 장돌뱅이 할배 강만(이도경 최연식)과 여덟 살배기 말썽꾸러기 손자 풍도(이지현)가 경상도 사투리로 그려내는 질펀한 풍속화다. 강만의 아들이자 풍도의 아비인 길재는 그 풍속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저주받은 존재다. 한때 부자였던 강만의 재산을 전부 말아먹고 망나니로 살다가 개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강만이 얼굴 한번 본적 없는 풍도를 매섭게 물리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풍도야말로 떠올리기도 싫은 ‘타자가 된 나’의 복사판 아니던가. 하지만 철없는 손자는 자기 마실 막걸리 값은 있어도 손자 자장면 사줄 돈은 없다는 그 유일한 핏줄이 무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매달린다.

그렇게 무대는 어떻게든 손자와의 인연을 끊어내려는 ‘음흉한’ 할배와 툭하면 그 할배의 상투머리에 올라앉으려는 ‘흉악한’ 손자의 유치찬란한 실랑이로 점철한다. 할배는 그 속에서 잊었던 어린시절 아들을 발견하고 손자는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부정(父情)의 일단이 싹틈을 느낀다. 더불어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길재와 화해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똑같이 가족애를 그렸지만 ‘엘리모시너리’가 여성적이면서 지적이라면 ‘늙은 자전거’는 남성적이면서 감성적이다. 그렇지만 두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같다. ‘내가 된 타자’와 화해할 때 비로소 ‘타자가 된 나’와 진정한 교감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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