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첫 章이다. ‘위령공’ 편은 修身(수신)과 處世(처세)에 관한 내용이 많다. 공자는 기원전 495년 위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위나라 영공과 대면한 듯하다. 당시 영공은 無道한 데다가 晉(진)나라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영공은 진나라에 원한을 갚을 생각에서 공자에게 진법을 물었다. 공자는 답변을 회피했다. 예법의 일은 알고 있다고 말하여 영공의 무도함을 諷刺(풍자)한 듯도 하다.
陳은 陣(진)의 옛 글자로 군대가 隊伍(대오)를 이루는 구조를 말한다. 俎豆의 俎는 희생물을 신 앞에 바치는 臺(대), 豆는 나무로 만든 제기이다. 俎豆之事는 祭禮(제례)나 禮法를 代喩(대유)한다. 則은 주어에 해당하는 어휘를 강조한다. 嘗聞之는 일찍이 들었다는 말인데, 배운 적이 있다는 뜻이다. 軍旅의 軍은 1만2500명의 병사, 旅는 500명의 병사로 이뤄진 軍團(군단)이다. 未之學의 之는 앞에 나온 軍旅之事를 대신한다. 짧은 부정문의 빈어가 대명사라서 빈어가 동사 앞으로 나왔다.
공자는 魯(노)나라가 齊(제)나라와 회합할 때 노나라 제후에게 무력을 갖추라고 제안했고, 제나라 군주가 시해되자 노나라 제후에게 범인을 토벌하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무도한 영공에게 군사의 일을 일러주면 재앙이 닥치리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군사의 일은 배운 적이 없다고 둘러말했다. 아무리 좋은 계책이라도 그것을 시행할 인물의 됨됨이와 그것을 실현할 시기의 適否(적부)를 살펴서 건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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