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장한나의 삶과 사랑 “첼로만 사랑하냐고요? 뱀파이어에 홀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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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1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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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인터뷰실에서 첼리스트 장한나(27)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걸고, 덕분에 자유로워진 두 손을 노트북 키보드에 얹는다. 신호음이 몇 차례 가는가 싶더니 이내 뚝 끊어진다. 수신자 거부. 사정이 있겠지.

휴대폰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전화벨이 울린다. 장 씨의 번호가 떴다. 서둘러 이어폰의 스위치를 켰다.

“죄송해요. 막 차에 타려는 순간이었거든요.”

부산 연주회를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참이라고 했다. 장 씨는 3년 만에 국내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11월 18일 구미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았다. 5일 서울 공연을 끝으로 그는 홍콩으로 떠난다.

최근 장한나 씨는 예능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전국적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유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와 넘치는 에너지가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성남아트센터와 청소년을 위한 ‘앱솔루트 클래식’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든요. 이 프로젝트의 목표가 ‘클래식의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과 나누자’예요. 클래식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만큼 풍부한 감정을 지닌 음악이란 걸 알리고 싶어 나갔죠. 뭐, 궁극적으론 성남아트센터 L 과장님의 설득에 넘어간 거지만. 하하하!”

알려져 있듯 장 씨는 현존하는 최고의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61)의 애제자이다. 첫 수업에서 마이스키는 “악보만 보지 말고 작곡가의 영혼을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장 씨는 “이 레슨이 내 음악 인생을 바꿔놓았다”라고 회고한다.

“마이스키 선생님의 말씀은 결국 음표와 음표 사이를 읽으라는 거지요. 차이코프스키의 경우 악보만 봐도 엄청나게 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그의 ‘수많은 눈물을 흘리며 곡을 썼다’는 한 마디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믿습니다.”

장 씨는 현재 하버드대학 철학과를 휴학 중이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유명인들의 외부 활동을 배려해주는 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연주여행을 떠나기 전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한국의 일반 대학생과 다를 게 없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하하, 늘 그렇죠. 여자들은 다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잘 안 빠져요. 3kg 빼는 것도 어렵죠. 사실 연주자들은 대부분 점심을 잘 먹고 저녁은 안 먹어요. 무대 올라가기 전에 바나나 한 개 정도 먹죠. 그런데 2시간 이상 연주하고 나면 굉장히 배가 고프거든요. 밤 11시, 12시 다 돼서 식사를 하죠.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요. 게다가 연주여행을 다니면 오히려 쪄요. 매 끼니 때마다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첼로하고만 살 수는 없겠지요?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이 있나요?”

“주로 영화 속에 많죠. 작년에 런던 가는 비행기에서 ‘트와일라잇’을 봤어요. 혹시 보셨어요? 남자 주인공(로버트 패틴슨)이 너무 멋있어요. 연주 끝나고 호텔에 가서 또 봤죠.”
 

장한나 씨는 2년 전부터 지휘활동을 겸하고 있다. 어쩐지 지휘를 하다 보면 오케스트라가 꼭 거대한 첼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순간, 오케스트라가 나와 하나가 되는 악기란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엄청난 집중력이 나오죠. 9월 앱솔루트 연주회 때도 그랬어요. 심지어 청중 한 분은 ‘숨도 못 쉴 정도였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순간에는 왜 그토록 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이 평생 지휘자로 남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매번 체험하지만 음악에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있어요.”

장 씨는 요즘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79)로부터 지휘법을 배우고 있다. 지난 여름에 3주간 공부했고, 연말에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내년엔 아예 마젤이 자신의 농장에서 6주 정도 보내자고 초청해 주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국제적 신동으로 각광받아 장 씨를 아직 10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부분에서 장 씨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논리적인 말솜씨와 어른스러운 행동 탓에 30대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올해 나이 스물일곱. 슬슬 30대를 그려 볼 때가 됐다.

“10대가 되기 전에 첼로를 만나서 음악을 사랑하게 됐고, 10대에는 첼리스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대에는 스스로 선택해 지휘를 하게 됐지요. 큰 음악적 도전이자 성숙의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30대라 … 아직 더 성숙하고 싶어요. 만약 30대가 제 음악인생의 절정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겠어요? 적어도 50대, 60대까지는 자라야죠.”

“혹시 그때가 되면 첼로는 그만 두고 지휘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호오, 글쎄요? 하하하! 설마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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