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개막앞둔 국내 간판급 연극 두편 감상포인트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크리스마스 시즌은 공연계 최대 대목. 화려한 무대와 스타로 무장한 대형 뮤지컬이 격전을 치르는 한복판에 한국 연극계의 간판급 연극 두 편이 공연된다. 명동예술극장 개관기념 네 번째 공연으로 11일∼내년 1월 3일 무대에 오르는 ‘베니스의 상인’과 12월 22∼27일과 내년 1월 6∼14일로 나뉘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둥둥 낙랑 둥’이다. 두 연극에 관심이 몰리는 이유와 관람 포인트를 뽑아본다.》

▼ 충돌 ▼
변칙연출 이윤택-정통파 배우 오현경
‘베니스의 상인’서 색다른 경쟁 선보여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이 아니라 귀족들의 사기극에 희생된 억울한 샤일록을 그려낼 ‘베니스의 상인’. 왼쪽부터 샤일록 역의
오현경, 교묘한 판결로 그를 울리는 포샤 역의 김소희, 샤일록을 경멸하다 빚더미에 앉는 안토니오 역의 정호빈. 사진 제공
명동예술극장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이 아니라 귀족들의 사기극에 희생된 억울한 샤일록을 그려낼 ‘베니스의 상인’. 왼쪽부터 샤일록 역의 오현경, 교묘한 판결로 그를 울리는 포샤 역의 김소희, 샤일록을 경멸하다 빚더미에 앉는 안토니오 역의 정호빈. 사진 제공 명동예술극장
배우 오현경 씨와 연출가 이윤택 씨의 만남이 의미심장하다. 올해 서울연극제 출품작 ‘봄날’에서 73세의 나이가 무색한 농밀한 연기로 명불허전이란 평을 받은 오 씨는 정통파 사실주의 연기의 제왕. 연극계에선 그를 ‘냉철한 완벽주의자’로 부른다. 반면 연출가 이 씨는 ‘파격의 마왕’이다. 전통적 해석을 뒤틀고 전복하거나 의표를 찌르는 데 선수다.

이 연극의 형식은 마왕이 제왕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지난달 26일 제작 발표회에서 이 씨는 “명동극장은 배우 중심의 공연장”이라며 샤일록 역에 처음부터 대선배인 오 씨를 염두에 두었다고 말했다. 제왕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요즘 연극이 어디 배우 중심인가, 연출가 중심이지”라고 받아쳤다.

이런 신경전엔 이유가 있다. 이 연극은 겉으론 격조 있는 명동극장 스타일의 연극을 표방했지만 속은 불온하기 그지없다. ‘베니스의 상인’의 안티고니스트(악역)인 유대인 수전노 샤일록을 프로타고니스트(주역)로 뒤집는다. 주류사회로부터 개 취급을 받던 샤일록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복수가 귀족들의 담합으로 좌절되는 정치적 사기극을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연극으로 익숙한 셰익스피어 극을 음악과 춤이 곁들여진 르네상스식 희가극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 연출의 변이다. 리얼리즘 연기로 일가를 이룬 오 씨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다.

충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험극장(오현경 씨), 민중극장(윤석화 씨), 극단 목화(한명구 씨), 연희단거리패(김소희 씨), 극단 골목길(주인영 씨) 등 대한민국 연극 명문가의 다양한 연기 스타일이 충돌한다. 이런 이종배합(異種配合)이 어떤 성과를 끌어낼지도 또 다른 관심사다. 2만∼5만 원. 1644-2003

▼ 신선 ▼
최인훈씨 원작 고집꺾고 변화 첫 허용
‘둥둥 낙랑 둥’ 국립극단 배우 총출동


‘둥둥 낙랑 둥’에서 사랑을 버리고 야망을 선택한 나쁜 남자 호동 역의 이지수(오른쪽)와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로 동생이 겪은
고통을 호동에게 고스란히 되갚아주는 고구려 왕비 역의 곽명화. 이들은 더블캐스팅된 이상직 계미경 커플과 연기 경쟁을 펼치게
된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둥둥 낙랑 둥’에서 사랑을 버리고 야망을 선택한 나쁜 남자 호동 역의 이지수(오른쪽)와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로 동생이 겪은 고통을 호동에게 고스란히 되갚아주는 고구려 왕비 역의 곽명화. 이들은 더블캐스팅된 이상직 계미경 커플과 연기 경쟁을 펼치게 된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둥둥 낙랑 둥’은 2006년 오태석 작·연출의 ‘태’ 이후 국립극단의 두 번째 국가브랜드 공연이자 ‘2010 서울 시어터 올림픽스’에 한국을 대표해 참가할 연극. 올해 국립극단 예술감독에 취임한 최치림 씨가 연출을 맡고 국립극단 배우 40여 명이 총출동하는 작품이다.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연극’에 걸맞은 무대를 보여줘야 할 작품이란 의미다.

이 작품은 올해 네 편의 작품이 개별적으로 무대화하면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고 재평가 받는 최인훈 원작의 공연이다. 게다가 올해 드라마(자명고)와 발레(왕자 호동) 등 다양한 장르로 조명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를 토대로 했다. 원작은 낙랑공주의 일란성 쌍둥이가 호동의 계모였다는 설정으로, 호동이 동생의 복수를 위한 계모의 유혹에 괴로워하다가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원작에 손 못 대게 하는 작가의 고집을 꺾고 변화를 가미한 점. 극의 시작과 끝 부분에 현재의 무당이 주관하는 호동(이상직 이지수 씨)과 낙랑공주(계미경 곽명화 씨)의 영혼결혼식과 호동의 꿈 형식을 빌린 전투장면을 삽입했다. 최 감독은 “절제와 생략이란 원작의 미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청각적 풍성함에 걸맞도록 시각적 아름다움을 담아내겠다”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분법적 세계를 무너뜨릴 농밀한 에로티시즘과 로맨티시즘의 세계를 그려내겠다는 작품이 어떻게 한국적 정경을 시각화해낼지도 관심사다.

최 감독은 “빛과 어둠, 새소리와 침묵이 교차하는 무대연출을 통해 한국화 한 폭에 담긴 여백의 미를 그려내 보겠다”고 말했다. 2만∼5만 원. 02-2280-4115∼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