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우리 장단 만난 맥베스, 동-서양 넘나들며 놀다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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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우투리’의 연극 ‘맥베스, 악(樂)으로 놀다’. 서양 고전과 한국의 장단을 결합해 새로운 미학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제공 나온씨어터
극단 ‘우투리’의 연극 ‘맥베스, 악(樂)으로 놀다’. 서양 고전과 한국의 장단을 결합해 새로운 미학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제공 나온씨어터
연극 ‘맥베스, 악으로 놀다’

극단 ‘우투리’의 연극 ‘맥베스, 악(樂)으로 놀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맥베스’를 우리네 놀이판에 던져 놓은 작품이다. 이 연극은 서양 고전과 한국의 장단이 만나는 흥미로운 지점에 서 있다.

코더의 영주가 된 맥베스를 칭송할 때는 ‘만세’라는 단어를 ‘쿵덕쿵덕쿵’ 리듬으로 ‘만세만세만’ ‘세만세만세’라고 반복적으로 읊었다. 대사 중간에 나머지 배우가 “얼씨구” “그렇지”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맥베스와 맥더프가 마주치는 마지막 장면은 판소리 못지않다. “미친개를 잡는 데는 칼바람이 제 맛이렷다!” “네놈의 예리한 칼날을 허공에 수천 번 휘둘러댄들, 내 피 맛을 보기는 가히 어렵것다. 이 몸은 여자가 낳은 놈에게는 절대 질 수 없는 생명의 마법을 갖고 있다.” “하, 그놈 두꺼비가 직립 보행하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익숙한 리듬이라 귀에 잘 붙었다.

6명의 배우는 모두 ‘2009년의 평상복’을 입고 있다. 옛날이야기를 ‘여기, 이곳’에 불러왔다는 뜻이다.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한지 의상으로 구별한다. 권력을 탐해 살인에 가담한 맥베스 부인은 끊임없이 손을 씻으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 죽는다. 뚝뚝 물이 떨어지는, 부인의 젖은 옷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채 어둠 속에서 무반주로 들려오는 노래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은 이 극의 메시지를 알려준다. ‘우리들의 모든 지난날은 바보들이 먼지 쌓인 죽음으로 가는 길.’

무대는 단순했다. 천장에 불규칙하게 매어 놓은 무명천과 한지, 악기 겸용으로 쓰는 앉은뱅이 의자와 물통이 전부. 배우는 등장인물이자 무대 위의 구경꾼으로 극을 넘나들었다. 관객석도 무대와 분리된 어둠 속 공간이 아니라 빛의 강약을 이용해 그 경계를 느슨하게 했다. 장구와 타악기 연주자도 ‘산받이(악사이면서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역할)’로 극에 개입한다. 이런 요소들은 극이 무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놀이처럼 ‘열려 있는’ 느낌을 강조했다. 다만 할미와 영감의 재담 장면처럼 극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부분이 이따금 눈에 띄어 아쉬움을 주었다.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 2만 원. 02-3673-5580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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