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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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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정성 없으면 죽은 茶 佛法 수행도 같은 이치
과거의 어려움 돌이켜보면 지금 경제위기도 안 두렵지”
“뱁새는 언제나 한마음이기 때문에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
우리나라 다도(茶道)의 중흥조로 꼽히는 초의선사(1786∼1866)는 1826년 거처를 대흥사 위쪽으로 옮긴 후 이곳의 이름을 중국 당나라 시승 한산의 시를 따서 일지암으로 정했다.
19일 오전 전남 해남군 대흥사에서 20분 다리품을 팔았을까. 이마에 땀이 약간 맺힐 무렵 작은 차밭 뒤로 일지암이 고개를 내밀었다. 22일부터 시작하는 서산대제와 대한민국차인대회 및 초의문화제가 열리는 대흥사의 회주이자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인 보선 스님(63)을 만났다. 차를 모르면 절집 생활이 몇 곱절로 고달픈 곳이 대흥사다. 차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제사를 모시면서 차례라고 했어요. 차를 올려야 제사가 되는 거죠.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그게 다반사(茶飯事) 아닌가요. 차는 우리 민족과 그만큼 가까웠습니다.”
두륜산 자락의 대흥사는 초의선사와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향기가 짙게 남아 있다. 서산대사는 ‘죽은 뒤 의발(衣鉢·가사와 발우)을 두륜산 대흥사로 옮겨 제사를 지내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대흥사는 풍담 스님부터 초의선사까지 13대종사를 배출했다.
“찻잎을 따서 아홉 차례 덖고 비벼보면 잎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줄 몰라요. 다선일미(茶禪一味), 차와 선이 둘이 아니죠. 사람의 땀과 정신이 없으면 죽은 차죠. 수행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스님은 올해에도 바쁜 시간 틈을 내 직접 찻잎을 따서 우전(雨前·곡우를 전후해 딴 찻잎으로 만든 차)을 만들었다.
다담(茶談)을 나눈 지 얼마나 됐을까. 작은 연못의 물소리와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 차 향기가 한데 어우러졌다. 옛날 얘기가 나왔다. 출가에 얽힌 사연을 묻자 스님은 “처음부터 중이 되려고 한 게 아니야”라고 했다.
“17세 때 집 근처에 있던 월출산 도갑사로 공부한다고 갔는데 슬슬 물이 들었어요. 절집은 일도 많고 시어머니도 많아 생활이 어려워요.(웃음) 그런데도 부처님 법이 좋으니까 넘어갔죠. 그러다 걸망 지고 왔다갔다 했더니 이 나이가 됐네요.”
스님은 은사 천운 스님이 준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로 수행해 왔다. 조심스럽게 무엇을 얻었냐고 묻자 “뭘 그런 걸 물어. 차나 한잔 마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가 떠오른다.
잠시 후. 차 한 모금을 들이켠 스님이 웃음과 함께 한마디 툭 던졌다.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자정기의 시제불교(自淨其意 是諸佛敎)라고 했지.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죠.”
석가모니 부처를 포함한 일곱 부처의 공통적인 가르침으로 알려진 ‘칠불통계(七佛通戒)’다.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공부법은 없을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데…. 산중에서 편안하게 사니까 말을 쉽게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눈앞의 욕심을 따르다 보니 더 괴롭고 어려운 거죠. 남과 싸우면 한없이 괴롭고 그 싸움은 끝이 없어요. 남이 아니라 자신과 싸워야죠.”
대화가 종단 현안인 10월 총무원장 선거에 이르자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계종이 덩치는 커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의외로 인재가 부족하고, 정체성도 더욱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선거에서 과거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싸움은 없을 겁니다. 또 싸우면 불교 전체가 죽는다는 공감대가 있으니까요.”
좋은 씨를 뿌려야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이 스님의 말이다.
“어제의 나를 알려면 오늘 내가 처한 모습을 보면 됩니다. 이전에 그런 씨를 심었으니 오늘 내가 그런 것이고, 오늘 뿌린 씨가 다시 내일 자신의 모습입니다. 어쩔 수 없는 어제라는 업(業)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습니다. 직장이나 공부, 수행의 이치가 모두 한 가지입니다.”
해남=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