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지 않은… 김지하의 ‘못난 詩’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김지하 시인(68·사진)에게는 민주화운동 경력과 함께 저항시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70년대 필화사건을 불러일으켰던 ‘오적(五賊)’,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타는 목마름으로’ 등 대표작 때문이다.

이런 그가 자칭 ‘못난 시들’을 썼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못난 시’는 지금까지 써온 시와 사뭇 다른 작품이다. 그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쿨하고 재미있는 시를 써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두 아들의 제안과 ‘어수룩하게 살고 못난 시 쓰라’는 오랜 벗인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주문으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만의 신작 시집 ‘못난 시들’(이룸)은 스스로를 ‘아날로그 꼰대’라 칭하는 노 시인의 상념을 비롯해 그가 기르는 고양이 땡이, 가족과 얽힌 소소한 일상 등을 쉽고 재미있게 담아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따로 제목을 붙이는 대신 ‘못난 시 1’ ‘못난 시 2’처럼 ‘못난 시’로 통칭한 뒤 그 옆에 번호를 붙였다. 번호 역시 그가 생각나는 대로 붙인 아무 의미 없는 숫자다. 편하게 읽히는 시들이지만 시집 전반에서도 평생 몰두해온 민족문화운동가, 생명사상가로서의 철학이 엿보인다.

김지하 시인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해 “주부나 학생들이 참여했던 초반 평화시위는 ‘기위친정(己位親政·밑바닥이 임금 노릇을 한다)’의 징후였지만 자칭 ‘민주화세력’, 일명 ‘꾼들’이 난동을 부리며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생각을 ‘시끄럽게 일부러 난장 만들어/제 몫 챙기러 드는/왼쪽 오른쪽/…두 놈들 똑같이/정말로 나는 싫어’(‘못난시 9’) 등에 담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동학과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비평한 에세이집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전 4권)도 함께 나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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