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친화 기술 너무 발달 되레 ‘인간소외’ 부를 수도”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인문학적으로 본 테크놀로지… 내일 ‘인터페이스’ 학술대회

영국의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1972년에 펴낸 저서 ‘마음의 생태학’에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맹인의 지팡이는 그 사람의 일부인가’ ‘근시가 심한 사람에게 안경은 몸의 일부인가’라는 문제다. 김재영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인간과 기계(도구)의 경계는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라고 설명한다.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이 문제는 더욱 복잡미묘하다. 특히 컴퓨터는 계산을 위한 도구 수준을 벗어나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더 나아가 사용자의 정서를 파악하고 감성을 고려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김진현 독일 쾰른대 음악학과 강사는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이제 공학의 영역에 국한돼선 안 되며 커뮤니케이션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인문학, 사회과학에서도 다뤄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과 한국문화연구원은 8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인문학적 시각으로 본 인터페이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조윤경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미리 제출한 발표문에서 우선 인터페이스의 정의를 △인접한 지역, 몸 혹은 국면들 간의 경계를 형성하는 표면 △독립적인 체계들이 상호작용하는 지점 △컴퓨터와 다른 실재물(프린터 혹은 사용자)의 상호작용이나 소통의 지점 등으로 정리했다. 그는 “우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대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으며 모니터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서 “그러한 인터페이스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인간중심’이라는 명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중심의 인터페이스는 인간 이외의 것들을 타자화한다”면서 “너무 인간 친화적으로 기술이 발달하다 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면까지 기술이 대치함으로써 인간 자체를 타자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예상했다. 조 교수는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인터랙션)에 대해 “점점 인간이 기계화하고 기계가 인간화하는 방식으로 소통이 이뤄지면서 두 영역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가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과 미래’를 발표하는 김동호 숭실대 글로벌미디어학부 교수는 “최근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은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복합감각적, 또는 체감형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성능의 발전만 추구해선 안 되며 인간의 감성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혜련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매체와 공감각 그리고 자연적 인터페이스’에서 “사유 주체는 분명히 ‘나’인데 ‘나’는 컴퓨터 없이는 불안하다”면서 “매체를 ‘전달체’라는 도구로 파악해야 하는지 ‘인간의 확장’으로 봐야 할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이와 관련해 “현재의 디지털 매체는 조작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유 자체를 결정하는 도구가 됐다”는 독일 예술사학자 올리버 그라우의 말과, ‘매체는 인간의 확장이다’라는 캐나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언의 정의를 소개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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