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시’ 입힌 소품, 골목 표정을 바꾸다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 연희동 프로젝트

불필요한 장식 최대한 자제

마치 커다란 냉장고 보는듯

■ 솔라즈 빌딩

계단 노출시켜 바깥과 소통

상업시설 골목에 쉼표 역할

입꼬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사람 얼굴에 은근한 멋을 더하듯, 모퉁이의 색다른 건물 한 채는 익숙한 골목의 표정을 바꾼다. 무심히 돌아선 모퉁이에서 마주친 흥미로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프로젝트’와 마포구 ‘솔라즈 빌딩’은 밋밋했던 길 한끝에 작지만 강렬한 맵시를 입힌 소품이다.

5일 오후 연희동 주택가. 폐품수거 리어카의 가위질 소리가 선명히 울리는 골목길에 흰색의 ‘연희동 프로젝트’가 서 있다. 자동차 차체에 쓰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소재로 표면을 감싸 얼핏 커다란 냉장고처럼 보인다.

노출콘크리트나 벽돌로 마감한 주택들 사이에 솟아 있는 흰색 건물에 눈길을 둔 행인들이 잠깐씩 멈춰 고개를 갸웃거린다. 길을 마주한 두 개의 벽면 어디에도 출입구가 없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다가서서 건물 경계 안쪽으로 발을 디디면 그제야 주차장을 겸한 마당 뒤로 세모나게 뚫어놓은 입구가 눈에 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이 건물은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사설 갤러리다. 3월 26일 개관한 뒤 배준성 김남표 등 작가 10명이 함께하는 전시회가 17일까지 열린다. 몸의 위치를 바꿈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등 기발한 전시작품이 건물의 독특한 디자인과 어우러졌다. 직각 없이 비껴 엇갈린 벽면 사이사이에는 예상을 벗어난 생김새의 아기자기한 전시공간이 하나둘 숨어 있다.

건축주인 배윤성 연희동 프로젝트 대표(39)는 “냉장고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팟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창한 ‘랜드마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며 “설계자인 홍택 시스템랩 대표(42)와 의논해 불필요한 장식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공간의 독특함에 전시 작품이 묻혀버리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겉보기보다 널찍한 느낌의 전시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닥 바로 위 두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따내고 반투명 강화 플라스틱을 씌워 은은한 자연광을 유입시켰다. 밤에는 은은한 내부 조명을 건물 밖 골목으로 내보내는 빛의 통로가 되는 디테일. 2층 전시실의 지붕 모서리를 도려낸 천창도 마찬가지다. 전시 작품과 빛의 관계를 고민해 만든 이 공간 밖을 지나는 사람들은 동네의 낮과 밤 풍경을 바꾼 재미난 이웃을 얻었다.

매끈한 연희동 프로젝트와 달리 솔라즈 빌딩은 오돌토돌한 건물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체를 덮은 금속재의 구멍이 있는 타공 패널이 쇼윈도 일색으로 이어진 이 골목의 풍경을 바꿨다. 홍익대의 ‘클럽 문화권’과 이질적인 분위기를 형성한 서교호텔 뒤 유흥가의 흥청망청 분위기는 건축면적 257m²의 이 6층 건물을 만나 아담한 쉼표를 찍었다.

이 건물의 설계자인 온고당아키텍츠 안우성 대표(43)는 “건축주의 동의를 얻어 기계식 주차설비를 마련해 이웃한 건물보다 외부의 여유 공간을 늘렸다”며 “경쟁하듯 빽빽하게 들어찬 상업시설 골목에 작은 숨통을 열어 놓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솔라즈 빌딩의 표정을 결정한 요소는 측면 계단이다. 건물 외부로 노출해놓은 이 계단은 전면 도로에서 2층과 3층으로의 접근성을 높인다. 계단을 외부로 열어놓음으로써 길은 건물 안으로 연장되고 내부 공간은 길 밖으로 확장됐다. 내부 공간을 거리와 단절시키지 않고 소통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계단을 둘러친 가벽을 완전히 막아놓지 않고 1층부터 3층까지 죽 이어진 틈새를 둔 것도 같은 이유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건물 안팎의 사람들을 시야에 둔 상태에서 위아래로 이동한다. 건물 안팎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바깥 공간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자연채광과 환기가 이루어지는 중정(中庭)은 건물 안팎 공간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건물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두 개의 유리벽으로 건물 속 정원을 희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들은 나뭇가지 모양으로 디자인한 건물 표면 타공 패턴과 이어진다. 닫아 건 듯 열어놓은 정원의 풍경이 건물 옆으로 흘러내리는 계단을 통해 바깥과 소통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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