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디트]‘인사동 스캔들’ 미술감독 이후경 씨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45분


소품용 가짜그림 30분만에 ‘뚝딱’

“화가의 꿈, 영화에서나마 이뤘죠”

30일 개봉하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미술이라는 ‘외투’를 걸친 범죄영화다.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숨겨진 명화 ‘벽안도’ 복원을 놓고 내로라하는 ‘떼쟁이’(복원 전문가) 이강준(김래원)과 미술계 ‘큰손’ 배태진 회장(엄정화) 사이의 배신과 음모를 그렸다.

이 작품에는 100여 점의 그림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벽안도뿐 아니라 영화 초반 경매품으로 올라오는 누드화 ‘창가의 여인’, 불타 죽은 송태수 화백의 ‘자화상’, 이강준이 복원했다 잃어버린 ‘강화병풍’까지…. 영화에서는 명화로 불리지만 이 그림은 영화를 위해 그린 ‘가짜’들이다.

17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후경 미술감독(32)도 스스로를 떼쟁이에 비유했다. “떼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떼쟁이는 저죠. 영화판에 뛰어들면서 접은 화가의 꿈을 이번 영화에서 비슷하게나마 실현했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뭐, 결국 작품이 되지 못하고 영화 속 소품으로 남을 테지만….”

이 감독은 홍익대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돈을 벌기 위해 대학 2학년 때 영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해바라기’, 케이블 채널 OCN의 드라마 ‘동상이몽’ 등에서 미술을 담당했다. 영화 속 그림은 이 감독의 인맥을 통해 그려졌다. ‘벽안도’는 이 감독의 고교 선배인 이형주 화백, ‘창가의 여인’은 대학 친구, ‘자화상’은 이 감독과 또 다른 대학 친구가 작업했다. 영화 속 배 회장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걸린 서양화가 마크 로스코풍의 그림은 모두 이 감독의 작품이다.

미술 작업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난다. 배 회장 책상 뒤에 걸린 300호 크기(가로 3m, 세로 2m)의 그림은 “무조건 큰 그림을 구해 오라”는 요구에 따라 이 감독이 30분 만에 페인트로 작업한 것이다.

미술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배 회장의 갤러리를 꾸미는 데만 1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미술비가 순 제작비 37억 원의 10분의 1가량이다. 이 감독은 “최대한 기존 작품들을 감쪽같이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며 “관객들의 눈높이와 리얼리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외양만 그럴듯하게 흉내 낸 것은 아니다. 창고 지붕에 눈이 내려앉은 장면을 위해 촬영 2시간 전부터 50명의 스태프가 눈을 퍼다 날랐다. ‘벽안도’도 안견의 대국적 스케일의 화풍과 필법을 연구해 4개월 동안 그린 것이다. 그림을 완성하는 점 하나를 찍는 데도 ‘장인정신’이 들어갔다고 했다.

“영화에서 이야기가 중요하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죠. 때로 ‘때깔’이 이야기를 압도하기도 하고 영화 흥행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비주얼이 어설프면 관객들은 귀신같이 알아채요. 컴퓨터그래픽(CG)도 함부로 못 씁니다. 영화 미술로 먹고살기 힘들어졌죠.”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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