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법정 스님 길상사 설법 - 신도와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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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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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수록 善業 쌓아야 禍가 福으로 돌아와”

‘무소유’의 법정(76) 스님이 최근 펴낸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가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는 서점가에서 발매 한 달 만에 12만 부가 판매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어디에선가,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메시지여서 그런지 연말연시 선물용으로 단체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16일 호젓하게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 들른 스님과 차 한잔을 나누며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몹시 편찮았으나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회복한 스님은 “보시다시피 다 좋아졌다. 근데 강원도는 너무 추워서 이번 겨울은 따뜻한 남쪽에서 보낼 생각으로 거처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마침 길상사 경전반과 기초교리반 수강생이 합동으로 스님의 설법을 듣는 시간이었다. 설법전을 가득 메운 400여 명의 신도는 웃거나 눈물짓고, 때론 무릎을 치며 스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1시간에 걸쳐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강의한 스님은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유언으로 강의를 맺었다. 신도들이 고대하던 질의응답 시간은 스님과 수강생들의 불꽃 튀는 기자회견이나 다름없었다. 다소 장황한 질문은 길상사 주지인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이 ‘통역’했다. 이처럼 소탈한 질문과 답변을 듣는 일은 드물어서 스님의 인터뷰를 이로 대신해도 좋을 것 같다.
―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내가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폭소) 하지만 오만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겸손이 도움이 되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원래 겸손한 존재입니다. 오만한 생각을 버리면 겸손이 드러날 것입니다.”
―참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것이 제 업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불교에서 ‘사바세계’란 ‘참고 견뎌야 할 세상’ 또는 ‘겨우 견딜 만한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만사가 우리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이 때문에 인간들이 노력을 하게 되고,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지요. 또 힘든 일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평소 ‘마음을 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달마 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너그러운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한 생각 뒤틀려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구나.’ 이처럼 온 세상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우리 마음이고, 좋은 것을 남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곧 ‘열린 마음’입니다.”
―타 종교에 비해 불교가 상대적으로 포교 노력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불교는 전통적으로 포교보다는 구도(求道)의 종교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불교계가 분발해야 하지만 불자들이 제대로 생활하면 저절로 포교가 된다고 봅니다. 포교는 본질적으로 남을 감화시켜야 합니다.”
―인간은 왜 그렇게 종교에 집착하고, 절이나 교회를 떠나지 못합니까.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내 종교입니다. 절대 종교에 얽매이지 마세요. 특히 종파적이고 원리적인 종교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교든 비(非)불교든 자기 종교의 좁은 길로 가지 말고 크고 넓은 보편적인 신앙의 길로 가야 합니다. 종교적 주관은 잃지 말되, 신앙생활 한다는 냄새는 피우지 마세요. 종교 때문에 가족 친구들과 다퉈서도 안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중이 어떻게 고3의 마음을 알겠습니까.(폭소) 다만, 마음 열리는 대로 하되 틀에서는 벗어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모들은 제발 아이들을 종교의 틀에 가두지 마세요. 싹수가 없어집니다. 부모의 잣대로 애들을 재서는 안 됩니다.”
―자식은 어떤 인연으로 부모에게 오는지요.
“자식이 있어 봤어야 알지….(폭소) 어떤 경전에 ‘남자는 그 엄마가 좋아서 태중에 들어가고, 여자는 아빠가 좋아서 그 집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과론적으로 보면 좋은 인연으로 부모 자식으로 만날 수도 있고, 원수끼리 애를 먹이기 위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어느 한쪽에서 먼저 마음을 열고 전생의 악업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특히 그래야 합니다.”
―불자들은 타 종교에 비해 착한 대신 잘 못산다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교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웃음)
“좋은 질문입니다. 일본은 90%가 불교 신도지만 세계적인 경제대국입니다. 세계 60억 명의 인구 중 내가 과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굶지 않고 먹고살 만하면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부의 가치는 결코 물질에 있지 않지요. 물론 잘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릇이 차고 넘치면 화를 부릅니다. 자족(自足)하세요.”
법회가 끝난 뒤 주지스님 방에서 법정 스님과 차 한잔을 나누며 저간의 궁금한 점을 여쭸다.
―몹시 편찮으셨다고 들었던 터라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걸리던데요.
“책 내용은 그렇지 않아요.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나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경제가 어렵고 사람들이 살기 힘듭니다. 어떻게 이 험난한 세월을 넘겨야 하겠습니까.
“재화는 한정돼 있는데 탐욕스러운 성장을 지속 추구해 온 인류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지만 결코 낙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선업(善業)을 쌓아야 화(禍)가 복(福)으로 돌아옵니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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