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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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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손 그냥 놔둬. 그럴 돈 있음 땅 사. 딸년 고쳐봐야 돈 돼? 땅 사 둬야 돈 돼.”
이 대사가 나올 때 배우들은 ‘울컥’한다고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세대는 다르지만 이 땅에서 여자로 사는 고단함에 배우 모두가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연극 ‘엄마열전’(극단 차이무, 연출 민복기)이 16∼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된다. 민씨 네 집 며느리 넷이 김장을 하면서 이어가는 수다가 줄거리다.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인 극작가 윌 컨이 한국 여성들을 인터뷰해 쓴 작품이다.
9일 오후 대학로 연습실에서의 연습이 끝난 뒤 만난 배우 신혜경(45) 이지현(36) 전혜진(32) 김수정(25) 씨는 ‘엄마, 아내, 딸’에 관한 질펀한 수다를 풀어냈다.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다른 사람보다 몇 배씩 인내해야 했던 첫째며느리. 이 역을 맡은 신혜경 씨는 연극만큼이나 어려웠던 실제 시어머니를 돌아봤다.
“어느 날 아들이 떡하니 여자를 데리고 와선, 이 여자 아님 결혼 안 한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린 거죠. 시어머니 심정이 어떻겠어요. 며느리가 예쁠 리 있나. 내가 첫애로 아들을 낳았으니 그게 다행이었죠.(웃음)”
그러나 그는 “결혼하고 20년 지나니 어머님이 이해되고, 나 자신도 어머님을 닮아가더라”며 웃었다.
노심초사 딸 걱정인 둘째며느리 역의 이지현 씨도 “내 배역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찍 시집가서 시댁에서 알게 모르게 마음 고생하는 여자”라면서 “자기 삶을 찾지 못하니 자식한테 기대게 되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너 손 이런 게 이 엄마 평생 한이야…우리 막내딸 결혼하는데…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부여야 하는데….”(부주의로 딸 손을 다치게 한 넷째며느리의 엄마가 울먹이는 장면)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면서 자란다. 그렇게 커서는 문득 ‘엄마를 닮은’ 자신을 발견한다.
넷째며느리 역의 김수정 씨도 그랬다. “시장에 가면 100원이라도 깎으려는 엄마가 너무 싫었어요. 지금 독립해서 혼자 사는데 어느 순간 내 모습이 딱 엄마더라고요. 장보러 가면 1만 원 안 넘기겠다고 아등바등.”
전혜진 씨도 맞장구쳤다. “‘눈 온다 빨리 들어와라’ ‘그래서 어떻게 시집가니’, 엄마가 날 아직도 애처럼 생각하면서 잔소리했는데…. 그런 엄마가 참 싫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며 말투며 점점 엄마 닮아가요.”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이지현 씨에게 애틋한 기억은 신혼여행 뒤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나섰을 때다. 돌아보니 현관을 떠나지 못하고 서 있는 엄마. “친정에 다시는 못 오는 게 아닌데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이 집 남자들 하늘이잖여. 어머님이 그렇게 길렀잖어. 여진 아빠두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해여.”(남편이 아침도 차려먹을 줄 모른다고 며느리들이 한탄하는 장면)
이 대목에서 남성에 대한 묘한 애증이 교차됐다.
“어려운 일 닥치면 남자들은 혼자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하더라고요. ‘뭘 알려고 해?’ ‘알아서 해결할 게’, 이런 얘기들 하는데 알아서 못하는 경우가 더 많던 걸요.(웃음)”(전혜진 씨)
“남자들이 안쓰러울 때 있어요. 가장으로 큰 짐을 짊어져야 하잖아. 고단한 모습을 보면 남자로 사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싶어요.”(이지현 씨)
20년 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신혜경 씨는 “그래도 남편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밤에도 잠꼬대로 대사를 욀 정도로 긴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이들은 이번 작품에 남자 관객이 몰릴 것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여자도 남자도 수다 떠는 걸로 스트레스 푼다고 하잖아요. 버스에서, 전철에서 들을 수 있는 아줌마들 얘기로 여기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길 바랍니다.”(김수정 씨) 1만5000∼2만5000원. 02-747-101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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