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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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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조화 세계대회 약진… “한국 속기전 범람 자충수”
“1970년대 생은 한국 기사만 못하고, 80년대 생은 비슷하고, 90년대 생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바둑국가대표 감독인 마샤오춘 9단이 중국 바둑계를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마 9단의 언급은 이창호(1975년생) 이세돌(1983년생) 9단은 몰라도 그 이후엔 중국 기사들이 대등하거나 앞설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마 9단의 말대로 올해 중국 기사들이 세계 기전에서 약진하며 90년대 이후 정상의 자리를 누려온 한국 바둑계를 흔들고 있다.
최근 열린 제1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회전에서 중국의 퉈자시 3단은 한국의 허영호 윤준상 7단, 일본의 야마시타 게이고, 고노린 9단을 물리치며 4연승을 거뒀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신예였던 최철한 박영훈 9단이 3, 4연승을 거뒀던 활약과 비슷하다. 바둑계는 중국 무명 신예의 실력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점에 감탄하고 있다.
퉈 3단의 활약처럼 올해 세계대회에서 중국의 약진은 눈부시다.
3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7회 춘란배 16강전에서 한국 선수는 이창호 9단이 유일하게 8강에 올랐다. 나머지 7명은 모두 중국 선수.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1회 후지쓰배에선 구리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불계승하며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4강에는 중국 선수 3명이 올랐다.
한 달 뒤인 8월 열린 도요타덴소배의 결과는 더 참혹했다. 한국 선수들은 모두 8강전에서 탈락해 4강에는 중국 선수 3명, 일본 선수 1명만 남았고 결국 결승전엔 구리 9단과 박문요 4단이 진출했다.
9월 삼성화재배에서도 8강에 오른 선수는 중국 5명, 한국 3명, 일본 1명이었다.
한국은 응씨배에서 이창호 최철한 9단이 동반 결승한 것 외에는 세계대회에서 중국에 밀렸다.
중국의 약진에 대해 국내 바둑계는 ‘올 것이 오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바둑계는 △중국의 공동연구 제도 △한국 바둑의 지나친 속기화 등으로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마샤오춘 9단의 지도 아래 구리 창하오 9단을 비롯해 20여 명의 정예 기사들이 월∼금요일 중국기원에서 공동연구를 한다. 최근 유행하는 신수와 포석 등에 대해 1명이 주제발표를 하고 다른 기사들이 질문을 하며 토론식으로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것.
마치 한국이 1990년대 초 일본을 따라잡을 때 이창호 9단과 신예기사들이 충암연구회에서 각종 신수와 포석을 개발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창혁 9단은 ‘월간 바둑’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최정상의 고수가 ‘바로 이 수’라고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신예 프로기사들이 소규모로 공동연구 모임을 갖고 있지만 중국처럼 체계적인 방식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9월 삼성화재배에서 중국의 셰허 쿵제 딩웨이 7단, 정옌 2단 등이 신수를 구사하며 한국 선수들을 물리치는 등 연구의 효과가 톡톡히 나타나고 있다.
또 최근 국내 바둑계에서 속기전의 범람으로 신예 기사들이 제한시간 2∼3시간인 세계대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최대 규모인 한국바둑리그의 경우 TV 중계를 이유로 경기당 4판이 속기이고 1판만 장고 바둑이며 국수전 왕위전 명인전 등 신문기전 말고는 대부분 속기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승준 9단은 “최근 부진한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9단이 부활하면 당분간 중국과 각축을 벌이는 형세로 갈 것”이라며 “세계 대회를 대비해 신예 기사들을 훈련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