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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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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컵에 담기면, 젓가락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낵에 담기는 것일 뿐 아니라 4000년 이상 지속된 식품의 역사 속에 잠기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는 2005년 한 해 동안 850억 봉지의 인스턴트 면을 소비했다. 갓난아이와 에스키모 등을 포함해 한 명당 1년에 열두 봉지를 먹은 것이다. 2010년이 되면 한 명당 100봉지를 먹을 것이다.”》
지역-계층 가로지른 국수의 역사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국수’로 통칭되는, 면 요리에 관한 책이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베트남의 쌀국수, 일본의 라면, 한국의 냉면 등 세계의 국수는 종류도 많고 역사도 길다. 저자는 이런 국수를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 아이콘이자 세계를 잇는 역사적 산물로 파악한다. 이러한 세계적 아이콘의 문화사를 다룬 책이 ‘누들…’이다.
저자는 일본에 거주 중인 스위스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스위스 라디오방송 DRS와 독일 국영 라디오방송을 거쳐 스위스 시사주간지 ‘디 벨트보헤’의 러시아 특파원 및 아시아 지사장,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수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닌 경험은 이 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이론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국수를 소비하는 현장 체험을 책 속에 녹여 냈기 때문이다.
국수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지만 저자에게 ‘누들’은 언제 어디서 처음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진 않다. 오히려 이 ‘매개체’가 자연스레 녹아든 세계 각국의 문화를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 속에서 국수는 ‘4000년 이상 지속된 세계화의 산물’이자 그러한 세계화로 인해 생성된 ‘복합문화의 산물’이다.
“국수는 고향인 중동에서 유럽으로, 그리고 기원전에 이미 아시아로 퍼졌다. 국수는 세계화의 초기 예로 인용될 수 있다. 추측하건대 (국수는) 빵 이후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공장에서 생산된 ‘최초의’ 가공식품일 것이다.”
저자가 볼 때 실크로드는 비단길인 동시에 ‘누들로드’-실제로 이렇게 불린 적도 있다-이기도 하다. 중동에서 시작해 세계로 펴져 나간 국수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한 문화를 대표하거나 혹은 뒤섞이면서 복합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재미난 점은 국수의 대중화는 근대 도시의 성장과 궤적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처음 유럽에 전해졌을 때만 해도 국수는 교황이나 국왕, 귀족이나 승려 같은 특권 계층만이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밀가루가 대중화하며 간편한 요리법과 짧은 조리시간과 맞물려 ‘누들’은 서민들의 요리로 변모한다.
중세시대 이탈리아 나폴리의 파스타나 일본 에도시대의 소바 역시 그러했다. 도시가 성장과 함께 노동력을 요구한 결과로 도시로 유입된 시골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국수는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자리 잡게 된다. 한때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국수가 지역을 가로지르는 여행에 이어 ‘계층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함으로써 서민들의 음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다시 20세기 아시아인들의 미국 이주라는 대륙 이동을 따라 국수는 ‘패스트푸드’로 다시 발돋움한다.
‘누들…’은 문화사를 다룸에도 무겁지 않고 현장 냄새가 생생하다. 저자의 중국인 아내, 딸 미오와 함께 떠난 음식 여행기처럼 즐겁고 유쾌하다. 그런 편안함 속에서도 국수의 역사적 문화적 면모도 알차게 담겨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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