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화났어” 돌아온 헐크, 1편을 부쉈다…‘인크레더블 헐크’

  • 입력 2008년 6월 10일 03시 00분


리안 감독의 진지한 해석으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2003년 ‘헐크’와 달리 ‘인크레더블 헐크’는 46년 묵은 미국 토종 괴물의 원초적 매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사진 제공 UPI 코리아
리안 감독의 진지한 해석으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2003년 ‘헐크’와 달리 ‘인크레더블 헐크’는 46년 묵은 미국 토종 괴물의 원초적 매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사진 제공 UPI 코리아
12일 개봉하는 ‘인크레더블(incredible·경이로운) 헐크’는 2003년 리안(李安) 감독이 만든 ‘헐크’의 속편이 아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짊어졌던 전작을 무시한 채 시치미 뚝 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다.

5년 전 “원작 만화의 독창적 변주”(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라는 소수의 찬사는 ‘보라색 바지를 걸친 슈렉’이라는 원작 팬의 분노에 묻혔다. 마블엔터테인먼트가 ‘2편’이 아닌 ‘새로운 1편’을 만든 것은 이 때문. 2011년 마블의 슈퍼히어로가 총출동할 ‘어벤저스(Avengers)’가 대기 중인 상황에서 리안의 자취는 서둘러 지워져야 했다.

마블이 선택한 감독은 ‘더 독’, ‘트랜스포터-엑스트림’ 등 눈요기 액션 연출에 능숙한 루이 르테리에. 대중성에 몰두하는 뤼크 베송의 제자인 이 35세 프랑스 감독은 미국 토종 안티히어로(antihero)에 씌워 놓은 무거운 성찰의 짐을 벗겨냈다.

가뿐해진 녹색 괴물은 강적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혐오)’과의 전투에만 집중한다. “헐크! 부순다(smash)!”라는 원작 만화의 대사를 부르짖으며 땅을 가르고 폭풍을 일으키고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거인. 판타스틱 포,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의 능력을 압도한다.

속편 출연 계약을 했던 2003년의 헐크 에릭 바나 등 주요 출연진도 싹 바뀌었다. 새로 주연을 맡은 에드워드 노턴은 ‘프라이멀 피어’(1996년), ‘파이트 클럽’(1999년) 등에서 탁월한 이중인격 연기로 명성을 높인 배우다. ‘두 얼굴의 사나이’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이다. 프라이멀 피어 결말 부분에서 ‘눈 치켜뜨는’ 반전의 변신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노턴. 그는 ‘인크레더블 헐크’ 라스트신에서 그 장기를 다시 보여준다. “제어하고 싶은 게 아니라 없애고 싶어”라던 변신 능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 순간 치켜뜬 눈과 함께 살짝 올라가는 입 꼬리가 섬뜩하다.

헐크의 연인 베티 역의 리브 타일러는 ‘반지의 제왕’ 요정 이후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배역을 맡았다. 괴물이 된 연인을 애처로이 바라보는 타일러의 커다란 눈망울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노턴이 느닷없이 의협심을 발휘해 적진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촉촉하게 젖은 타일러의 눈빛이 어색함을 잊게 만든다.

1970년대 인기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를 기억하는 올드 팬을 배려한 요소도 넉넉하다.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며 쓸쓸히 아스팔트길을 걷는 노턴의 모습은 드라마 끝에 반복됐던 장면이다. 배경에 흐르는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드라마 타이틀 ‘외로운 남자(The Lonely Man Theme)’.

타일러가 노턴의 셔츠 밑단을 바지에서 빼주는 장면은 드라마 주연 고(故) 빌 빅스비의 촌스러운 패션에 대한 위트 있는 오마주다.

드라마에서 온몸에 녹색 칠을 하고 헐크를 연기한 루 페리그노는 노턴에게서 피자를 갈취하는 경비원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헐크의 목소리도 페리그노의 것이다.

영화에서 브루스 배너 박사는 분노가 치밀어 심박 수가 분당 200회를 넘으면 헐크로 변신한다. 왜 200회일까. 심장이 감당할 수 있는 분당 최대 심박 수는 220에서 나이를 뺀 값이다. 30대 배너 박사의 최대 심박 수는 180∼190회. 여기에 ±10의 오차를 감안한 최대치가 200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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