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7분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성석제 지음/340쪽·1만2000원·문학동네

‘농담하는 카메라’란 제목 때문에 멋진 사진과 글이 있는 사진 에세이집이려니 생각한 이들은 실망할 듯하다. 여기 실린 사진은 대부분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냥 찍어 본 것 같은 사진들이다. 하지만 소설가 성석제의 ‘입담의 힘’을 믿는 이들은 ‘재미있는 글에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까지 보너스로 있다’며 환호할 것이다.

시계, 막국수, 선물, 책, 표지판….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인해 장르를 규정하기 다소 힘들어진 (그러나 통상 산문집으로 분류되는) 이 책은 그가 일상 혹은 여행에서 만난 갖가지 사물들과 그것에 얽힌 각색의 추억들이 사진과 글로 버무려져 있다.

맛보기로 ‘판도라의 상자, 라면’ 편을 살펴보자. ‘희망소매가격: 1000원’이라고 써진 컵라면 뚜껑 사진(말 그대로 ‘라면 뚜껑’을 찍은 사진)과 함께 담긴 단상은 “희망을 소매한다니? 언제부터 희망이 도매금, 소매가격으로 팔 정도로 흔해졌는가?”이다. 작가는 “희망이 라면처럼 흔하다면 세상에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희망소매가격’이란 용어가 ‘희망하는 소매가격’이라고 적혀야 중의성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왜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눈치 채지 못했던 일상의 빈틈을 포착하는 작가의 눈이 반갑다.

작가의 글에서 그는 ‘카메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동카메라조차 최소한 셔터를 누르는 조작은 필요하다…내 조작의 셔터는 농담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이 삶의 농담 유희 웃음을 담아냈음을 드러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각자 나름의 가치관, 세계관으로 조작된 셔터로 찍힌 사진들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다면, 조작의 셔터는 무엇이 될지. 그리 보면 ‘농담하는 카메라’란 제목도 사색적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