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리뷰]‘88분’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8분


한결같은 알 파치노… 군더더기 없는 카리스마

형님이 돌아왔다.

‘대부’(1977년)로 입신해 ‘스카페이스’(1984년)에서 한 경지에 닿고, ‘여인의 향기’(1993년)로 광기를 벗는 듯하더니 ‘칼리토’(1994년)와 ‘히트’(1995년)로 복귀해 ‘데블스 애드버킷’(1997년)에서 악마 경력까지 추가한 그 형님. 알 파치노(68)의 신작 ‘88분’(29일 개봉·사진)이다.

파치노가 많은 남성 영화 팬에게서 ‘형님’으로 추앙받는 것은 ‘형님 영화’로 불리는 갱스터물에 자주 출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총을 뽑아들었던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전성기에도 ‘형님’ 칭호를 얻은 것은 저우룬파 한 사람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의 강도가 아니라 깊이와 안정감.

감독이 누구든 파치노가 출연한 영화는 ‘알 파치노의 영화’로 남는다. 더구나 ‘88분’의 존 에브넛 감독은 1997년 ‘레드 코너’ 이후 10년간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관객의 시선을 클라이맥스까지 붙드는 것은 오로지 파치노의 깊이 모를 카리스마뿐이다.

범죄심리학자 잭 그램(알 파치노)이 사이코 연쇄살인마와 벌이는 88분간의 사투. 어디서 많이 본 플롯에 어디서 많이 본 액션이다. 하지만 파치노의 연기가 영화의 흠결을 거의 모두 덮어 가려준다.

파치노는 ‘쉼 없이 때리고 부수며 법석을 떨어야 지루하지 않다’는 편견을 군더더기 없는 연기로 압도한다. 6월 5일 개봉할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에서 노장 더스틴 호프만(71)의 목소리를 얻은 너구리가 손가락 하나로 험악한 적을 가볍게 눌러버리는 모습과 닮았다.

고희(古稀)를 바라보지만 ‘쌩쌩한’ 현역. ‘88분’에서 대학원생 역을 맡은 젊은 배우들은 노장이 내뿜는 광휘에 가려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 스웨터를 벗어붙이고 34년 연상 교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아리따운 34세 조교. 불가항력으로 보인다.

원맨쇼가 된 이 영화에서 파치노가 ‘새로운 뭔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19년 만의 ‘인디아나 존스’가 그저 인디아나 존스다워서 만족스럽듯, 변하지 않은 파치노의 연기는 식상하기보다 안심이 된다. ‘형님 아직 정정하시구나. 다행이다.’ 그런 느낌.

‘88분’은 최근 스릴러 영화의 추세와 달리 잔인한 장면을 남발하지 않는다. 볼품없는 요리솜씨를 감추기 위해 핫소스를 듬뿍 얹는 패착을 피한 깔끔한 스릴러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범인이 누군지 일찌감치 눈치 채 맥 빠질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연막을 치지만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 결말은 신선도가 떨어진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사람. 맞다. 그 사람이 범인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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