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님 영전에…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소설가 신경숙 씨
소설가 신경숙 씨
죽어있는 것을 살려내시던 선생님

당신은 뭇사람의 고향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말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였습니다. 그러고는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세상과 연결된 수많은 끈이 모두 끊어지려는 것처럼 충격으로 다가온,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

무엇이 안 된다는 것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비명처럼 안 된다고 내뱉고 난 후 며칠 동안 제가 했던 일은 선생님도 이 세상을 뜰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구나, 박경리 선생님도 돌아가실 수가 있구나.

어리석게도 선생님 연세가 적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 어째서 선생님이 타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을까요. 그동안 수도 없이 선생님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는 얘길 전해 들었으면서도 선생님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니… 어째 이럴 수가 있었을까요? 무의식적으로 선생님은 죽음이나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분으로 그리 여기고 지내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일을 한사코 미뤘습니다. 어쩐지 선생님은 이번에도 잠시 그러고 계시다가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꼭 그럴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는 동안 거 봐라, 내 생각이 맞지 않느냐, 선생님이 어떤 분인데… 싶었지요. 어젯밤에 비가 내려서 오늘 아침 빛이 유난히 좋은 것을 보며 속으로 선생님, 어서 쾌차하셔서 이 빛을, 어쩐지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실 것 같은 생명을 실어 나르는 이 따사로운 봄빛을 보셔야지요, 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아침을 보낸 오후에 선생님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부산히도 움직이는 이 세상이 한순간 정지하는 것 같습니다. 이젠 한숨 돌리셨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 꽃이 물러나고 다른 꽃이 피면, 초록이 더 짙어지면 찾아뵙고 선생님 무릎 밑에 큰절을 올려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쌉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문학으로도 인생으로도 죽어 있는 것을 살려내기 위한 일생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타계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근원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생명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예찬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했던 마음 저변에 있는 건 아직 좀 더 선생님의 울타리 안에서 자식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작가로서 선생님을 뵙기 전에 먼저 읽은 ‘토지’는 그냥 문학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일구어 놓으신 모국어의 강한 생명력은 뭇사람의 고향이었지요. 고단함과 슬픔에 빠진 자들일수록 선생님께 빠져들었던 이유는 선생님에게로 가면 용서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을 겁니다. 이렇듯 선생님께서 모국어로 창조해 놓으신 사람들과 선생님이 끝까지 가꾸신 것들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정작 선생님은 가시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언젠가 위가 좋지 않은 이 후배를 위해 선생님께서 싸 주셨던 느릅나무 줄기를 허둥지둥 찾아봅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모순투성이의 인간과 그 인간을 감싸고 있는 자연의 힘찬 박동소리를 전해 주는 스승이셨습니다. 언젠가는 가엾이 소멸해야 하는 만물들을 어루만지는 큰 손을 지닌 어머니이시기도 했습니다. 스승은,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셔도 더 터를 넓혀 가며 날마다 푸르러지며 살아나는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위로가 됩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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