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한손엔 피아노, 한손엔 지휘봉… ‘김대진 쇼’

  • 입력 2008년 4월 18일 03시 29분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는 동안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팔은 한 순간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의 손은 건반 위를 바쁘게 내 달리다가 갑자기 머리 위로 치켜올려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평소 협연 때와 달리 관객을 등지고 앉은 김대진은 1악장과 4악장에서는 피아노를 치다가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휘젓기도 했다.

○ 내달 수원시향 상임지휘자 취임

15일 밤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교향악축제’ 수원시향의 연주회는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지휘를 하며 동시에 피아노를 치는 이벤트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국내 정상의 피아니스트인 김대진은 5월 1일 수원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할 예정이어서 2000여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이날 공연은 큰 관심을 끌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그야말로 김대진의 ‘황제’였다고 말이죠. 지휘자가 없다는 게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실내악과 같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지휘자에게 끌려가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눈과 귀를 열고 음악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죠.”

미국 클리블랜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피아노 독주자로 명성을 얻은 김대진은 2004년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청소년음악회에서 지휘와 해설, 연주를 해왔으며, 2005년에 수원시향에서 객원 지휘자로 데뷔했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손열음, 김선욱과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키워낸 교수이자 지난해부터는 실내악단인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주, 실내악, 교향악 연주와 교육 활동까지 그야말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인 셈이다.

37년간 피아노를 연주해 온 그가 마흔 살이 넘어 지휘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건 일생일대의 도전이다. 그는 “풍부한 실내악 경험을 바탕으로 단원들의 기량과 색깔을 최대한 살려주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 대중적 기획공연 준비… 단원들 색깔 최대한 살려낼 것

“수원시향이 저를 부른 것은 지휘능력만 보고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임 지휘자인 박은성 선생님이 닦아놓은 탄탄한 연주기량을 바탕으로 좀 더 대중적인 기획공연을 통해 수원시민에게 사랑받는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유명 솔리스트를 협연자로 초청하거나 자신이 직접 모차르트, 쇼팽,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 겸 지휘하고, 수석 단원들과 함께하는 실내악 프로젝트, 청소년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야외 음악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외국의 경우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공연에 가장 최선을 다한다”며 “수원시향도 서울 관객보다는 수원시민들이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악단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금호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연주회를 갖는 그는 한국에서 가장 바쁜 음악인이다. 아침에 2시간 정도 개인 연습을 하고,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리허설을 하느라 주말에도 밤늦게 퇴근한다. 가족들은 미국에 있어 5년 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저녁 약속은 꿈도 못 꾸고, 대한민국에 있는 김밥은 혼자 다 먹는 것 같다”며 웃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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