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2007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 10권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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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난 당신이 부질없는 것에 열중한다고 짐작하겠다. 세상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넓다. 그 세계는 책이 움직인다.”(프랑스 사상가 볼테르)

2007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 10권이 선정됐다.

올해 1월 6일부터 12월 15일까지 본보에 소개된 책을 포함해 학계 출판계의 추천을 받아 90권을 추렸다.

선정위원 25명이 이 중 5∼10권을 추천했으며, 리스트에 없는 책은 별도 추천했다.

선정된 책은 가장 많은 득표(20표)를 기록한 ‘만들어진 신’을 비롯해 비문학 7권과 문학 3권.

문학은 모두 국내 작가의 작품이 뽑혔고, 비문학은 인문 과학 교양 경제서 등 다양했으나 영미권 저자(4명)가 많았다. 10권의 책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게 빛난다.

그러나 볼테르는 또 말했다.

“아무리 유익한 책도 가치의 절반은 독자가 창조한다”고.

저물어가는 한 해, 시끌벅적한 세상을 벗어나 더 큰 세계에 빠져 보시길.》

○과학의 중심에서 세상을 외치다

만들어졌으되, 신은 강했다.

영국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의 신작 ‘만들어진 신’(김영사)은 올해 책 중 가장 빛났다. 이 책은 “극단적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 자체가 문제’라는 직격탄으로 국내외에 논쟁을 불러왔다.

선정위원 25명 중 20명이 이 책을 추천했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는 “비합리적 신앙은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 의미 있는 선동서”라고 했다. 7월부터 7만 부가량 나가 시장 반응도 좋았다.

도킨스가 신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면, 미국 과학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지구에 닥친 재앙의 원죄를 인간에게 묻는다.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은 내일 당장 인간이 사라진다면 생태계가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과학적 예측서다.

와이즈먼이 지구 복원의 해법을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서 찾은 것도 흥미를 끌었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의 허병두 대표는 “정치적 의미로만 받아들이던 DMZ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 관념을 참신한 발상으로 뒤집었다”고 말했다.

상반기 인문과학서 중에서는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이 화제작이었다. 역사적 천재들의 삶에서 창조적 발상의 13가지 생각 도구를 추출해 직관과 상상에서 천재성을 끌어내는 방법을 설파한다. 생리학자인 남편과 역사학자인 아내의 ‘크로스오버’가 돋보였다. 6만 부 이상 팔리며 ‘만들어진 신’과 함께 인문시장의 부흥을 이끌었다.

○책 속에서 시대의 길을 찾다

비문학 분야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우리 저자의 행간을 메우는 월척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는 제3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서구 선진국들을 ‘나쁜 사마리아인’에 비유하며 시장주의의 허점을 파고든다. “‘사다리 걷어차기’ 등 문제적 저술을 이어온 장 교수가 일반인을 위해 쉽게 저술한 경제서적”(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이란 평이다. 5만 부 남짓 나갔다.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 은어에서 따온 ‘노름마치’(생각의나무)도 돋보이는 국내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0세기 대중문화를 생활사 측면에서 접근한 값진 보고서”라고 말했다. 전통예술가인 진옥섭 씨가 예인 18명의 애잔한 삶을 씨줄날줄로 구성지게 엮어냈다.

월에 출간된 데이비드 베레비의 ‘우리와 그들, 무리 짓기에 대한 착각’(에코리브르)은 차분하지만 제목만큼 긴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다문화사회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탈민족주의 사고를 요청한 책”(김기봉 경기대 교수)이란 평도 나왔다. 촘촘히 선을 긋는 세상에서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게 아니라 한패가 되고서 서로 닮아간다”는 베레비의 일침은 한국의 실상을 꼬집는 듯했다.

남미에서 건너온 자서전 한 권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의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민음사)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보여 줬던 향취 높은 글 솜씨로 개인사적 글에 그치지 않고 시대와 역사를 녹여냈다. 선정위원 중 문인들의 지지가 높았다.

○한국문학, 다시 불을 지피다.

007년 한국문학의 봄은 ‘남한산성’(학고재)이 열었다. 병자호란이란 역사의 치욕을 들여다보되 담담한 허무로 일관하는 화법에 독자들은 환호했다. 소설에 무관심하다는 30대 이상 중장년 남성층의 지지 속에 36만여 부가 팔렸다. 지난달 대산문학상 수상으로 문학적 성취까지 인정받으며 작가 김훈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남한산성’이 심지에 불을 댕겼다면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는 한가득 끼얹어진 기름이었다. 작가의 귀환을 알림과 동시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새로운 글쓰기의 출발을 알렸다.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는 “남한산성과 함께 한국 문학 르네상스의 도래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27만 부가량 나갔다.

출간 전부터 한국문학 하반기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김연수 작가의 신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 1980년대 투쟁의 시대 끝자락에 걸쳐 있던 1991년 대학가의 풍경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짧았던 한 시대를 들여다본 작품이지만 어느 시대를 사는 이에게도 울림은 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의 책 선정 위원 (가나다순)

강유정(문학평론가) 강정(시인) 구본형(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장) 김기봉(경기대 교수·역사학) 김연수(소설가) 김인호(바다출판사 대표) 김형찬(고려대 교수·철학)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신병주(규장각 학예연구사) 윤성희(소설가)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동우(북세미나 대표)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이은희(과학칼럼니스트) 이주헌(미술평론가) 임진택(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 장은수(민음사 대표)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교수·물리학) 조원희(국민대 교수·경제학) 천운영(소설가) 최재천(이화여대 교수·생물학)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허병두(‘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대표)

선정위원들에게서 호평 받은 다른 책들

△부의 기원(에릭 바인하커·랜덤하우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강명관·푸른역사) △인간과 동물(최재천·궁리) △88만 원 세대(우석훈·레디앙) △선비답게 산다는 것(안인희·푸른역사) △행복의 건축(알랭 드 보통·이레) △나는 기생이다(정병설·문학동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이제이북스) △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북스코프) △미래의 물결(자크 아탈리·위즈덤하우스)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윌리엄 엥달·길) △친절한 복희씨(박완서·문학과지성사) △리진(신경숙·문학동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은희경·창비) △바람의 화원(이정명·밀리언하우스) △오늘의 거짓말(정이현·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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