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대못질’]제1부<20·끝>남시욱 교수 인터뷰

  • 입력 2007년 10월 17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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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학계로 들어간 뒤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 보수세력 연구’ 등 역작을 펴내 2007년도 ‘인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11일 열린 시상식에서 “기자실 폐쇄 등 현 정부의 무리한 조치의 철회를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학계로 들어간 뒤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 보수세력 연구’ 등 역작을 펴내 2007년도 ‘인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11일 열린 시상식에서 “기자실 폐쇄 등 현 정부의 무리한 조치의 철회를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시욱 교수는 정부의 기자실 폐쇄가 언론의 손발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외교통상부 기자들은 12일부터 기자실 출입이 금지되자 정부의 조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2층 로비에 앉아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남시욱 교수는 정부의 기자실 폐쇄가 언론의 손발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외교통상부 기자들은 12일부터 기자실 출입이 금지되자 정부의 조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2층 로비에 앉아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언론 손발 자르는 기자실 폐쇄, 역사가 심판할것”

《“브리핑룸(기자실)이 부처별로 있으면 해당 부처가 어떤 피해를 봅니까. 기자를 통합 브리핑룸으로 몰아넣는다면서 왜 청와대 기자실은 없애지 않습니까. 언론의 취재 현장에서 전방초소 역할을 하는 기자실의 폐쇄는 언론의 손발을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조치는 한마디로 원칙도 없고 이성을 잃은 처사입니다.” 남시욱(71) 세종대 석좌교수는 현재 폐쇄 중인 정부 브리핑룸에 대해 얘기하다 끝내 목소리 톤을 높였다. 40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한 뒤 학계에서 활동 중인 그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조치는) 현장에서 기자들을 몰아내 언론의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겁니다. 기자실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운영 방식을 개선하면 되는 것인데 기자실을 대못질해 없애 버리는 건 정부 스스로 취재의 대상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폭거’ ‘반민주’ 등의 용어를 써 가며 비판하다가 “정부가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아 결자해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그는 현 정부의 무리한 언론 정책은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자꾸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특권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특권이란 누려서는 안 되는 권리를 누리는 것이니까 당연히 안 됩니다. 하지만 기자실의 존재는 직무 수행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는 것이지 특권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특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실을 특권으로 인식하니까 자꾸 없애려는 것입니다.”

그는 정부가 선진국에 기자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과 다르고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도 기자실이 존재합니다. 각국의 취재 환경은 언론의 역사와 경험에 따라 다르므로 기자실의 유무가 선진화를 재는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취재 지원 선진화를 위해 먼저 도입해야 하는 건 ‘기자실 폐지’가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 확보와 정보 자료의 공개 원칙입니다.”

정보 공개 요청을 해도 시간을 질질 끌며 ‘공개할 수 없다’고 하거나 부실한 자료를 내놓아도 괜찮은 현행 정보공개법부터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모든 회의를 공개토록 하는 ‘햇빛 법(Sunshine Law)’이나 취재원을 밝히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비익권(비匿權)’ 등 언론 자유를 신장하는 조치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현 정부가 언론의 자유는 보면서 언론의 독립은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가 됐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자유는 물론 과거 독재시절에 비해 향상됐죠. 하지만 언론의 독립은 더 침해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청와대가 툭하면 ‘언론이 뭐든지 써대지 않느냐’고 하는 건 언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권력 정치권 기업 사회단체 노조 등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는 언론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 연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언론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곶감이 달다고 계속 먹다 보면 탈이 나게 돼 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이 당장 살아야겠다고 산소호흡기를 대면 독립이 훼손되고 나중엔 자유마저 침해되기 마련입니다.”

그는 권력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을 ‘죽음의 키스’에 비유했다. 독립이 침해되면 언론의 타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 정부가 지원을 친여적 언론에 집중시키면서 권력의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치게 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한국정책방송(KTV) 청와대브리핑 국정브리핑 등을 통해 스스로 언론 기능을 맡으려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공보’의 범위에서 벗어나 국영 언론을 운영하려는 것은 독재 시대에나 가능한 논리라는 것.

“미국 정부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사망 후 케네디 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하는 필름을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필름은 해외에서만 상영할 수 있도록 하고 국내는 금지했습니다. ‘공보’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였습니다. 만약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알리고 싶다면 당을 통해서 하도록 돼 있고 정부는 객관적 정보만 제공합니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를 위해 홍보를 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노무현 정부처럼 스스로의 잣대로 정책을 자화자찬하고 언론 보도를 반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비판과 감시의 대상인 정부가 스스로 감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언론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식이 현 정부 언론정책의 전반을 좌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에 대한 몰이해의 사례로 그는 ‘애그뉴 독트린’을 들었다. 스피로 애그뉴는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언론에서 닉슨 대통령의 베트남전 평화안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자 언론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며 수차례 언론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애그뉴 부통령은 “언론사의 간부 몇 사람이 어떻게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재단하고 공격할 수 있는가. 언론이 면책특권을 누리던 시대는 끝났다. 언론도 보도 내용과 태도를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민에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언론)이 어떻게 국민에게 선출된 권력(정부)을 비판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과 유사한 측면이 많습니다. 닉슨 대통령도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진보적 미국 언론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었죠. 언론계에선 이 독트린을 언론의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수년간 ‘합법을 가장한 언론 탄압’이 이어지는 것도 경계했다.

“언론에 대한 탄압은 독재시절처럼 물리적인 탄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법적인 형식을 띤 탄압도 무섭습니다. 과거 독재시절에 동아일보 취재차량을 길가에 주차시키면 유독 그 차량만 딱지를 뗀 적이 있었습니다. 법으론 맞지만 실질적인 형평성은 없었죠. 언론사 세무조사도 그 자체로는 타당하지만 언론을 무력화시키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매출 3000억 원의 회사에 대규모 조사요원을 투입해 무엇이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불을 댕긴 박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에 대한 보도는 그가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일어났다. 연이은 특종으로 박 군의 죽음이 고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정부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세졌다.

그는 신문이 배포되면 회사 밖으로 몸을 피했다. 사무실에 있으면 기사를 빼거나 줄여 달라는 압력 전화로 전화통에 불이 났기 때문이다. 안기부 문화공보부 청와대 검찰이 총동원됐다. 문공부 홍보조정실은 박 군 사건을 정부 발표에 따라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거부하자 안기부 언론팀이 개입했다.

“당시 안기부장이던 C 씨가 각사 편집국장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정부 발표 전까지 박 군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분위기에 압도돼 좌중에선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건 보도를 뚝 그치면 이상하므로 당분간 속보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다음 날 연이어 속보가 나갔죠. 이후 압력이 대단해 부국장을 불러 ‘내가 잡혀가더라도 당신이 나를 대신해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언론이 중도에서 굽히면 비참한 패배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주부터 일선 기자까지 일치단결하지 않고 숱한 압력에 굴해 어물어물했다면 박 군 보도는 지면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것이라는 것. 그는 권력과의 싸움에서 언론이 물러서면 그 존재 의의가 없어진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말을 끝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남시욱 석좌교수 약력

△1936년 경북 의성 생 △1958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

△1959년 동아일보 입사 △1980년 동아일보 정치부장

△1987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1988년 관훈클럽 총무

△198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 △1995년 문화일보 사장

△2000년 고려대 신문방송학 석좌교수

△2003년 세종대 언론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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