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대못질’]제1부<19>盧대통령 언론 비하…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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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바닥에서 기사 작성12일 정부의 기사송고실 폐쇄 조치로 기사송고실에 들어가지 못한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2층 로비 바닥에 앉아 기사를 쓰고 있다. 김미옥 기자
로비 바닥에서 기사 작성
12일 정부의 기사송고실 폐쇄 조치로 기사송고실에 들어가지 못한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2층 로비 바닥에 앉아 기사를 쓰고 있다. 김미옥 기자
박상범 한국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위 위원장(오른쪽)과 외교통상부, 통일부 출입 기자들이 12일 정부중앙청사 7층 국정홍보처 사무실 앞에서 강호천 홍보지원팀장(왼쪽)에게 기사송고실 폐쇄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박상범 한국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위 위원장(오른쪽)과 외교통상부, 통일부 출입 기자들이 12일 정부중앙청사 7층 국정홍보처 사무실 앞에서 강호천 홍보지원팀장(왼쪽)에게 기사송고실 폐쇄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 수많은 ‘막말’을 쏟아냈다. 언론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라기보다는 빈정거림과 적개심까지 묻어 있는 노 대통령의 막말은 많은 기자의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언론관은 참모들에게도 이어졌고 참모들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언론 대못질’을 강행했다.

○ 언론 탓하는 대통령

노 대통령은 최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막판에 언론에 타살 당했다. 나는 송장이 안 되고 떳떳이 걸어 나가겠다”는 말로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아들 등 측근 비리로 인해 스스로 몰락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언론 탓’을 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비판에 대해 ‘튀는 화법’으로 맞받아치며 더욱 강하게 대응하곤 했다.

정부가 3월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취재통제조치를 내놓은 뒤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노 대통령은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을 주장한다면 정부도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마치 ‘내 의견에 반대하면 역으로 더 세게 나가겠다’고 윽박지르는 식이다.

노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작심한 듯 언론에 폭언을 퍼부었다. 언론을 ‘불량상품’으로 규정하는 등 임기 말 최대 정적으로 언론을 지목한 듯 언론과 대립각을 세웠다.

노 대통령은 1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감시받지 않는 권력자, 이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며 “감시받지 않는 유일한 권력이 오늘 한국의 ‘언론권력’ 아니냐”고 주장했다.

1월 4일에는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점검회의 후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실한 상품이 돌아다니는 영역은 미디어 세계”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누구의 말을 빌렸는지 출처도 불명한 의견이 마구 나와서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 구조를 청산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집단”이라며 “언론 분야 하나만은 제대로 정리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월 23일 신년 연설에서도 “2004년에 심리적 위기를 차단하고자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아 떡이 됐다”면서 현 정부의 정책 혼선을 ‘언론의 흔들기’ 탓으로 돌렸다.

○ “제가 확실하게 대못질해 버리고…”

현 정부의 기사송고실 및 브리핑룸 통폐합 결정은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적대감의 완결판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언론은 검증받지 않는 위험한 권력”이라며 언론을 적대시했다. 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의중에 따라 언론정책을 실행해 왔다.

노 대통령은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할 수 있는 기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자였던 2002년 2월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좀 빼 달라, 고쳐 달라 하며 자주 만나고 ‘소주 파티’를 하고 향응을 제공하고…”라고 말하는 등 언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드러냈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시각은 임기 말까지 이어졌고 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몇몇 기자가 기자실에 딱 죽치고 앉아 담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대통령홍보수석실과 국정홍보처는 기사송고실 통폐합 방안을 집중 검토하기 시작했고 3월 22일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언론통제조치를 내놨다.

○ 참모들의 ‘빗나간 충성’

그 대통령에 그 참모일까. 노 대통령의 왜곡된 언론관을 이어받은 참모들은 충성심 경쟁을 하듯 앞 다퉈 ‘언론 탓’을 했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조차 “(청와대 참모들이)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해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동업자’로 부를 만큼 최측근으로 꼽히는 안희정 씨는 5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구 보수 언론이 참여정부의 역사를 거의 말아먹을 지경에 와 있다”며 “이 역사를 지키겠다고 의용군처럼 나선 지지자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기숙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도 최근 출간한 ‘마법에 걸린 나라’라는 책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조간에 프레임을 만들면 그걸 받아 석간인 문화일보가 확대 재생산한다고 주장하며 “노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해도 언론이 부정적인 주술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취재 통제안의 실무 기획자 중 한 사람인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조선 동아는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비판으로 법정 공방까지 간 ‘전력’이 있다. 전국 편집·보도국장들이 정부의 취재통제조치에 맞서기 위해 8월 언론자유 수호 결의를 했을 때도 양 비서관은 “과거 권력이 언론사 강탈을 위해 간첩죄까지 뒤집어씌우는 일도 있었고, 기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끌려가 고문당하고 폭행당한 기자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 그 시절,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 수많은 사건 때 한 번도 안 모이고, 48년 만에 이런 일로 모인 것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실망”이라며 비아냥거렸다.

‘홍위병’을 자임하는 청와대 참모들이 이처럼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언론과의 ‘전쟁’에까지 나서면서 노 대통령의 외골수적인 태도가 더욱 굳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피해의식 사로잡혀 ‘나쁜 언론’ 낙인찍기”▼

노무현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은 그 뿌리가 깊은 편이다.

1991년 주간조선이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의원, 알고 보니 호화 요트 소유한 부자”라고 보도하자 3억 원을 청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5월 민주당 고문이던 그는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을 찾아가 정부와 노동자 사이에서 중재활동을 하다 노조원들에게서 달걀 세례를 받았다. 이튿날 일부 신문이 ‘달걀 세례 사건’을 보도하지 않자 그는 “수구언론을 그냥 두고서는 한국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정치인도 시민단체, 대안언론 등과 손을 잡고 나서 잘못된 언론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보를 비롯한 많은 매체는 인권변호사로서 그의 활동상을 소상히 소개했고, 5공 비리 청문회 때도 ‘스타 의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지역 정서에 맞서 싸우는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는 조어로 조명해 인지도가 높아지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다수의 우호적 기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몇몇 기사에 대해서는 ‘모든 언론의 잘못’으로 규정한다는 평을 받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언론특보였던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언론에 대한 과도한 피해의식과 비뚤어진 언론관을 갖고 있어 조언하기가 참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 취임 초만 해도 노 대통령의 비판언론 매도 발언을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노 대통령의 교조적 언론관은 정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금과옥조처럼 굳어졌다.

이 때문에 최근 일각에서는 병리학, 심리학적 차원에서 언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공격적 태도를 분석하는 시각도 생겨났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조망(眺望) 수용 장애’라고 풀이한다. 황 교수는 “노 대통령은 나에게 정당한 것은 남에게도 정당하다고 확신한다. 사안을 하나로만 보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타인의 심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뿌리 깊은 열등감과 반항의식이 노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는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어릴 때 나는 가슴에 한과 적개심을 감추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열등감이 심했던 것 같다”고 적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교사는 생활기록부에 ‘두뇌 명철, 사리 판단력 풍부. 그러나 비타협적이며 극히 독선적. 불안한 거동이 많으며 악화(惡化) 우려. 지나치게 자만심이 강하여 비협조적임’이라고 썼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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