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아인슈타인 평전’은 과학코너? 인문코너?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2005년 여름, ‘산처럼’ 출판사의 윤양미 사장은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는 책을 발간했다. 일본의 역사적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이었다. 윤 사장은 이 책을 일본사(史)로 분류해 대형 서점의 인문 코너에 진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이 책은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인문 코너에 깔렸다.

신문에 서평이 소개된 뒤 윤 사장은 다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았다. 그런데 교보문고 직원이 이 책을 인문 코너에서 사회과학 코너로 옮기고 있었다. 깜짝 놀란 윤 사장이 이유를 물었다. 직원은 “신문 서평을 보니 시사적인 내용도 많고 해서 인문보다 정치사회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 해당 코너로 책을 옮기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코너를 배정하는 것이야 서점의 고유 권한이니 뭐라 할 수 없었지만 윤 사장은 내심 아쉬웠다. 정치사회보다는 인문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더 선호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간이 나왔을 때, 서점의 어느 코너에 책을 깔아 놓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코너에 책을 배치해야 한 권이라도 더 팔 수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러나 코너가 다양하게 나눠져 있는 대형 서점에서는 신간을 어느 코너에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특히 요즘엔 이질적인 분야를 넘나드는 책, 즉 장르 크로스오버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어 고민이 더 커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책들은 대부분 역사면 역사, 과학이면 과학, 미술이면 미술의 내용만 담고 있었다. 분류도 명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행이면서 인문 역사, 역사면서 미술, 과학이면서 인문 교양인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 분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행이면서 인문 역사인 책을 비소설 기행코너에 진열해야 할지, 인문 역사 코너에 진열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보문고는 한때 이 같은 크로스오버 신간이 나오면 두 코너에 모두 진열했다. 그러나 요즘엔 하나의 코너에만 놓고 있다. 다른 책들과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의 어려움은 더 커졌다.

교보문고 직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한다. 때로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코너를 결정하기도 한다. 한번은 아인슈타인 평전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다. 비소설 코너에 놓아야 할지, 과학 코너에 놓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설문 결과는 과학 우세였다. 직원들도 그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곤 인물 평전의 경우 인물의 직업에 따라 분류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음악가 미술가의 평전이면 예술 코너에, 역사가의 평전이면 역사 코너에, 과학자 평전이면 과학 코너에 진열하기로 한 것이다. 누구의 평전은 비소설에 배치하고, 누구의 평전은 과학이나 역사에 배치할 경우 분류 기준의 일관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광표 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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