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 보존 사명감에 18년간 전국 사찰 뒤졌죠”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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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과 박물관의 불화 3156점을 집대성한 ‘한국의 불화’ 40권을 완간한 석정 스님(오른쪽)과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범하 스님이 활짝 웃고 있다. 석동률  기자
전국 사찰과 박물관의 불화 3156점을 집대성한 ‘한국의 불화’ 40권을 완간한 석정 스님(오른쪽)과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범하 스님이 활짝 웃고 있다. 석동률 기자
‘옛 선사(禪師)들의 불화를 보존하고 싶어도 불화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알 수가 없구나.’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인 석정 스님의 안타까움이 대장정의 불씨가 됐다. 1989년 어느 날 석정 스님은 경남 양산시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인 범하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화는 종이여서 마모돼 없어지고 불에 탈 수 있지요. 그런데 불화를 모아 정리한 기록이 없으면 복원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전부 사진으로 남기면 후학들의 불화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로부터 18년 뒤 전국 사찰 476곳과 박물관 14곳에 소장된 3156점의 불화가 40권짜리 ‘한국의 불화’에 컬러 도판과 해설로 집대성됐다. 고려부터 6·25전쟁까지의 불화를 후불탱(불상 뒤에 봉안된 불화)과 괘불(야외에서 의식을 치를 때 거는 대형 불화), 보살탱(보살을 그린 불화) 등 8가지로 분류했다. 수록 불화는 전국 사찰과 박물관 소장 불화의 80%에 이른다. 정밀 촬영한 불화 전도는 물론 세부도도 함께 실어 제작 기법을 참조할 수 있게 했다.

석정 스님의 뜻을 받들어 1989년 범하 스님을 중심으로 한 전국불화조사단이 꾸려졌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3억 원을 후원했고 박물관 학예직 10여 명이 경북 김천시 직지사를 시작으로 불화 조사에 돌입했다. 조사는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전국의 사찰을 일일이 찾아 불화를 촬영하고 기록하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품이 들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무려 70억 원. 1996년 석정 스님이 평생 그린 작품 800점을 전시 판매한 돈을 모두 작업에 투입했다.

“불사를 위해 쓰는 것이니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었습니다.”(석정 스님)

힘들게 산속 사찰을 찾아가도 조사가 쉽지 않았다. 불화는 예불의 대상으로 불상 뒤에 걸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득 끝에 불화를 꺼내 조사하는 것도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만지지 않았으니 보이지 않는 먼지와 때가 엄청났지요. 현장에서 때를 벗기고 보존 처리를 한 뒤 촬영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겨울 산중의 사찰에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가는 것도 고역이었지요.”(범하 스님)

조사가 거듭될수록 기법과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괘불은 보통 아파트 6층 정도의 높이라 펴 놓은 상태에서 전체 촬영이 어려웠다. 결국 크레인을 이용한 공중 촬영 기법을 개발해냈다. ‘한국의 불화’ 완간은 불교미술 조사 방법의 축적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두 스님은 책 완간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지만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책은 전문가를 위한 자료집입니다. 해설을 더 쉽게 보완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불화 자료집을 더 낼 생각입니다. 이제 또 시작이죠.”

석정 스님은 이 사업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21∼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석정연묵전’을 열고 선서화(禪書畵) 300점을 선보인다. 한편 21일 오후 3시에는 서예박물관에서 ‘한국의 불화’ 완간기념회가 열린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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