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이성’을 넘어 ‘영성’으로

  • 입력 2007년 4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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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자폐… 15년 가족 고통 “그분의 힘으로 새 삶 찾았죠”

7월께 개신교서 세례 받기로

영원한 문화인, 통섭(統攝)의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어령(73·사진) 전 문화부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했다. 개신교에 귀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인식해 온 그였다. 종교를 논했지만 신앙인은 아니었고, 성서를 읽었지만 열정의 시선은 아니었다. 기독교방송에서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와 1년간 성서를 놓고 대담도 했다. 그러나 늘 제3자, 객관적 시각으로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던 그다.

그런 이 전 장관이 기독교를 선택하기까지는 딸 민아(47) 씨에게 지난 15년간 닥친 시련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고, 한때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로 활약하면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뤘던 딸이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교민사회에선 성공한 한인이자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다.

민아 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2년 갑상샘암 판정을 받은 뒤부터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아들이 특수자폐아동으로 판명이 나면서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고 그는 고백했다.

약물치료를 요구하는 학교와의 싸움, 기도 끝에 변호사 사무실까지 문을 닫고 아이 치료를 위해 무조건 하와이로 건너간 사연, 아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미국인 학교의 목사 앞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어린양을 받아 달라”고 통곡했던 일, 하와이에서 자신의 망막이 파열돼 시력을 잃었던 기억,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떼를 썼던 일….

“아버님이 하와이에 오셨는데 제가 눈이 안보여 설거지를 못하자 맘이 몹시 상하셨어요.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은 손이 커서 수술을 못한다.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결국 한국에 왔지요. 한국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았는데 망막이 나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의사가 ‘혹시 미국 사람이 영어를 빨리 해서 못 알아들은 것 아니냐’고 묻더군요.”

민아 씨는 자신과 아들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과정을 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새벽기도에서 공개했다.

울먹이며 흐느끼며 30여 분 동안 그가 사연을 털어놓자 교회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전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는 “아직 교리문답도, 세례도 받지 않았다”면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못 해준 것을 해준 분이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니냐”며 심경의 변화를 나타냈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는 그가 7월에 세례를 받을 예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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