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연기가 삶의 그릇이라면 음악은 긴 여행이죠"

  • 입력 2007년 3월 20일 20시 08분


코멘트
그 날 밤 '우용길'은 먼 길을 떠난 듯했다. 붉은 조명 아래 놓인 소주병과 안주, 그리고 기타. "아휴, 오래간만이야"라며 손을 내미는 그의 체온은 38도쯤이었을까? 잠바 차림에 운동화를 반 쯤 구겨 신은 그는 "아 정말 내가 뜬 건가?"라며 웃는다. 흰 가운을 입은, 드라마 '하얀거탑'의 날카로운 부원장 우용길은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직 살 냄새 풍기는 가수 김창완(53)만이 있을 뿐이다.

드라마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그는 공연 소식을 내놓았다. 5월 3, 4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6년 만의 솔로 공연 '빈티지 콘서트-김창완입니다'.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들이 "부원장님! 사인 해주세요"라며 달려드는 걸 보면 아직 병원 부원장 행세를 해도 좋으련만 그는 "끝나니 너무 후련해요"라며 넉살이다. 그러나 그는 4시간의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술잔을 비워나갈수록 고뇌하는 이 남자. 19일 밤 서울 서초동의 한 술집에서 만난 그는 점점 '칼'이 돼 갔다.

#소주 한 잔… 정체성

"음악은 복잡한 '여행'같고 연기는 삶을 담아내는 '그릇'같다. 사실 난 음악이 더 좋다. 하지만 칩거한 채로 음악에만 매진하면 내 식구들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연기자 김창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산울림' 팬들에겐 늘 빚진 느낌이 든다. 나 역시도 창작이 쉽지 않고 붕괴된 음반 시장이 두려우니…"

#소주 다섯 잔… 무대

"이번 공연은 지난해 산울림 결성 30주년 콘서트 이후 1년 만이다. 솔로 공연으로는 2001년 이후 6년 만이다. '빈티지 콘서트'라는 주제에 걸맞게 일반 스피커 대신 진공관 앰프를 사용해 소리를 증폭시키고 악기 역시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등을 사용해 마치 내 방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 어쿠스틱, 아날로그 콘서트라고 하지만 그보다 '난 여전히 가수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소주 일곱 잔… 음악

"요즘 난 200년 전 음악에 빠져있다. 요즘 음악? 안 듣는다. 못 따라잡는게 아니라 따라잡을 이유가 없는 음악들이 너무 많다. 가수들조차 음악의 힘을 믿지 않으려 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요즘같이 음악이 가벼워진 시대에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발표됐다면 바로 묻혔겠지. 하지만 난 30년 넘게 활동했지만 오늘도 난 음악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괴롭다."

# 소주 열 잔… 김창완

"요즘처럼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용길'에 집중하는데 그것은 옆집 아저씨 역, '복권' 광고 모델, 라디오 DJ 등 20년 이상 선한 이미지가 밑바탕에 쌓여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치 하얀 종이 위에 먹이 떨어진 것처럼…. 모두 그간 내 일상을 지켜본 친구, 동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다만 내 동생들(창훈, 창익)은 시큰둥하다. 그저 산울림의 리더로 돌아오라는 아우성 뿐…"

# 마지막 잔… 미래

"'산울림' 팬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게 있다. '왜 새 음반을 발표하지 않느냐'고. '침묵도 음악이다'는 아니지만 솔직히 내 음악은 현재 난관에 봉착해있다. 초등학생인 내 아들은 '50 넘었는데 중장년층 음악 안 하냐'고 묻지만 내 음악적 나이는 여전히 20대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도 난 온 힘을 다해 산다는 것. 신발 한 짝 없이 10m만 걸어가도 불편하듯 난 지금 음악적 결핍을 느끼며 풍요로웠던 과거를 상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삶에 대한 강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지금 당장 걸작을 만들지 못해도 나는 늘 음악에 대해 고민하며 살고 있다. 내일 내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내 미래는 현재의 결핍에서 나온다." 공연문의 1588-7890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