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권주열 ‘참 큰 가방’

  • 입력 2007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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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큰 가방 - 권주열

강동 바닷가 마을에는

참 큰 가방이 하나 있다

지퍼 같은 수평선을 열면

멸치 가자미 꽃게 고래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진다

가끔은 타고 나간 배 한 척 다 집어넣고 온 어부들이 신문에 나기도 하지, 그런데도 그 날

그 가방 속

가득 찬 것도 아니다

그 가방 그 날, 제법 더 묵직한 것도 아니다

강동에 오면

날마다 지퍼 같은 수평선을 열고

그 가방 속에서 둥근 해를 끄집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 시집 '바다를 잠그다'(정신과표현) 중에서

통통통- 수평선을 군복바지처럼 다리며 오는 저것이 다리미인 줄 알았더니, 지퍼 손잡이였구나. 수시로 출렁이면서도 결코 찢어지지 않는 저 푸른 잔등이 가죽이었구나. 멸치와 가자미뿐이랴, 수시로 고등어와 갈치와 새우젓을 우리의 밥상에 올려준다. 최초의 생명도 저 가방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를 낳고 우리를 거두어주던 저 젖어미도 점점 젖이 말라간다는 소식이다. 지나친 남획과 오염과 기상이변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꺼낼 것들이 점차 바닥이 나고 있단다. 날마다 둥근 해를 한 알씩 낳아 우리를 밝혀주는 저 젖어미에게 우리도 이제 효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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