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644년 존 밀턴 ‘아레오파지티카’ 발표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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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11월 24일 ‘실낙원(失樂園)’의 작가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밀턴(1608∼1674)이 ‘아레오파지티카’라는 글을 발표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가 분쟁 중이었고, 의회파 내에서도 다수인 장로파와 소수인 독립파가 대립하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레오파지티카’는 출판의 자유를 주장한 글. 당시에는 출판에 대해 사전 검열을 규정한 ‘출판허가제’가 있었는데, 의회의 장로파가 독립파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 제도를 악용했다. 물론 밀턴이 쓴 책들도 ‘출판허가제’의 저촉 대상이 됐다. 열일곱 살 어린 아내가 결혼 1년 만에 친정에 가서 돌아오지 않자 밀턴은 이혼을 고려했지만, 영국의 혼인법은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3년에 걸쳐 이혼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이혼의 교의와 질서’를 집필했는데, 의회는 이 책이 부도덕하다며 저자를 심문해야 한다고 나섰다.

이에 항의하고자 밀턴은 자기주장을 담은 책자 ‘아레오파지티카’를 만들어 배포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고등 법정 ‘아레오파고스’에서 제목을 딴 60여 쪽 분량의 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이며, 책을 죽인다는 것은 그 이상의 손실이 없을 만큼 큰 손실이며, 한 시대의 혁명들도 흔히 진리의 거부로 생긴 이러한 손실을 회복하지 못하며, 이렇게 진리가 거부된 속에서는 어떤 나라든 더욱 나쁜 상태에 빠진다.”(‘아레오파지티카’에서·임상원 옮김·나남출판)

출판허가제가 책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방해해 지적 발전에 장애를 가져오며, 진실과 허위를 공개적으로 대결하게 한다는 진리의 본질적 속성과 배치된다는 것이 밀턴의 논거였다. 다양한 의견과 지식을 억압하기 때문에 출판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밀턴은 다음과 같은 널리 회자되는 경구를 남겼다.

“나에게 어떤 자유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

이 글은 출판 검열뿐 아니라 사상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논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밀턴의 주장으로 불붙은 논쟁은 1695년 출판허가제 폐지로 결실을 이뤘다. 이 글은 발표 당시에는 큰 화제가 되지 않았으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더불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설파한 고전으로 평가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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