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아파하며 ‘한잔’… 술 취한 드라마 ‘비틀비틀’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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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며 술을 마신다.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위스키를 삼키고, 연적(戀敵)인 두 여자가 소주 마시기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요즘 지상파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멜로드라마에서 음주 장면이 두드러진다. ‘17도를 넘는 술은 광고를 금지한다’는 방송광고 심의 규정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드라마에 적용되는 방송 심의 규정에도 마약이나 음주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하며 청소년에게 유익한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18일 방송을 시작한 SBS ‘게임의 여왕’(토·일 밤 9시 55분)은 1, 2회에 걸쳐 온갖 종류의 술이 등장했다. 술병이 화면 구성의 주요 요소로 등장해 간접광고라는 의혹까지 살 만했다.

2회는 음주 퍼레이드 같았다.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알코올의존증 환자로 살아가는 한미숙(나영희)이 양주를 병째 마시다 이를 말리는 아들 이신전(주진모)을 술병으로 내리쳤다. 신전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목격하고 속상한 강은설(이보영)은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양주를 꺼내 마셨고, 신전은 은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안고 혼자 호텔방에서 코냑을 마셨다.

이번에는 멋지게 차려 입은 은설-김필서(최준용)와 신전-박주원(김수현) 커플이 고급 바와 포장마차를 옮겨 다니며 위스키와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은설은 “이 밤이 가기 전에 아주 취하자”며 술을 권했고 주원은 “위스키로 하자. 여기 블루 주세요” 하고 특정 상호를 말하기도 했다.

KBS2 ‘눈의 여왕’(월·화 밤 9시 55분)도 지금까지 나간 4회분 중 3회분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나갔다. 20일 방송에서는 여주인공들의 소주 대결이 벌어졌다.

천재 권투선수 한태웅(현빈)을 놓고 경쟁하는 부잣집 딸 김보라(성유리)와 체육관장 딸 이승리(유인영). 보라와 승리는 술상을 두고 마주 앉아 “긴말 필요 없고 일단 마셔” “끝까지 마셔서 이기는 사람이 오빠 가지는 거야”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마셔댔다.

15일 시작된 MBC ‘90일, 사랑할 시간’(수·목 밤 9시 55분)에도 주인공들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며 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16일 방송에서는 남자 주인공 한지석(강지환)이 소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며 고미연(김하늘)을 찾아가 “너만 내 옆에 있어 준다면 이 ×같은 세상…” 하고 수위를 넘는 욕까지 해 물의를 빚었다.

한 드라마 작가는 “술을 매개로 속내를 털어놓고 친해지고 싸우는 한국 사회를 반영한 것”이라며 “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표현되는 인물들의 감정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음주 장면이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에서는 TV 시청량이 늘어남에 따라 청소년 시기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8월에 국가청소년위원회 주최로 열린 포럼 ‘매스미디어에 나타난 음주 장면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도 드라마의 음주 장면이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 음주 충동을 불러오고 음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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