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영수]‘주몽’이 동북공정 맞장구 치나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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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C ‘주몽’ 홈페이지.
사진 MBC ‘주몽’ 홈페이지.
사진 MBC ‘주몽’ 홈페이지.
사진 MBC ‘주몽’ 홈페이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왜곡을 넘어 우리 역사의 뿌리인 고조선까지 부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듯 고구려와 발해의 건국자나 전쟁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드라마가 잇따라 방영돼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한 상업 TV가 방영하는 드라마 ‘주몽’의 내용은 흥미 본위로 흐른 나머지, 너무나 많은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어 드라마는 있어도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주몽은 없는 듯하다. 나아가 때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변하는 인상마저 준다.

주몽이 남하해 졸본(卒本·오늘의 환런·桓仁 일대) 땅에서 만난 과부 소서노를 드라마에서는 남하 전 부여에서 총각 처녀 때 미리 만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는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 해도 사실과는 너무 다르다.

더욱이 한(漢) 군현 중 낙랑군과 요동군에 비해 힘이 없었던 현토군(玄兎郡)이 철기병을 거느린 강대한 세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부여와 연타발, 송양 등 주몽이 남하하기 전 이미 졸본 일대에 있던 소왕국들, 즉 원고구려 세력은 현토군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집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현토군은 원래 고조선 땅과 유민을 다스리기 위해 세워진 군현이 아니다. 고조선을 대신해 흥기하기 시작한 원고구려 사회가 통일 세력으로 성장해 한제국의 새로운 위협이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세워졌다. 세워진 시기도 고조선이 멸망한 다음 해인 기원전 107년으로 딸린 현이 3개뿐인 작은 군이다. 드라마와는 달리 원고구려 세력에 의해 여러 차례 쫓겨 다니다 기원전 75년에는 푸순(撫順) 방면까지 물러나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

현토군의 전투용 등자(등子)와 철갑개마(鎧馬) 기병도 한나라가 아니라 서기 4세기에 이르러 고구려군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드라마에서는 주몽이 진번, 임둔군을 공격하는데 두 군현은 이미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훨씬 전에 토착세력에 의해 축출되어 멸망했다.

역사상 고구려 건국 드라마는 주몽이 부여를 떠나 엄리대수(쑹화·松花 강)를 건너 남하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몽은 먼저 계루부를 이끌고 쑹화 강을 건너 룽강(龍崗)산맥을 넘으면서 여러 세력을 모은다. 이어 비류수를 따라 졸본에 이르러 소서노 등 토착인의 도움을 받아 졸본 서쪽 산에 도읍을 정하고(오늘의 오녀산성) 군웅할거하던 원고구려 사회의 여러 소국을 통합해 고구려를 열었던 것이다.

이후 주몽의 아들 유리왕은 전한을 계승한 왕망의 신(新)과 대립하고 손자인 대무신왕은 북의 동부여와 남의 낙랑을 멸망시켜 대왕국을 건설했다. 5대 모본왕대에는 요서(遼西)를 넘어 현재의 베이징(北京) 외곽까지 한제국 본토를 공략하는 강대한 국가로 웅비한다.

드라마 ‘주몽’은 이러한 고구려의 발전 과정을 그리기는커녕 부여 왕실의 궁중 암투에나 매달리고 있어 답답할 뿐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중요한 논거 중 하나가 고구려가 한제국 통치하의 현토군 안에서 건국되었다는 점을 든다. 그런데 드라마가 이러한 ‘동북공정’의 핵심 내용에 맞장구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역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더 장쾌한 고구려의 참모습이 그려지기를 바란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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