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위선환/‘이명(耳鳴)’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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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가 굴러도 소란하다 하물며

오래 닳은 마차길이 그렇듯

울퉁불퉁 파이고 군데군데 구멍도 뚫렸을 공전궤도(公轉軌道) 위를 지구가

덩이째로 구를 때

오직이나 소리가 울리겠는가

그 큰 소리도 못 듣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이 밤에는

하늘 복판으로 좔좔 냇물 흘러가는 소리 들리는 듯,

자욱하게

은하계의 별밭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들리는 듯,

귓구멍을 후벼 뚫고 다시 귀 기울여도……

-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현대시) 중에서》

속담에 남의 눈에 티는 보여도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했는가? 이명은 반대로 바깥의 큰 소리는 듣지 못하고 제 속의 귀울음만 들려옴을 일컫는다. 현상은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자기만의 독선과 오만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성인군자 아닌 범부들에게야 늘 내 허물보다 남의 허물이 크게 뵈며, 남의 의견보다 내 고집만 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자학할 필요는 없다. 콩은 콩대로 팥은 팥대로, 자기 고집대로 사니까 삼라만상이 삼라만상 아니겠는가. 다만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이명’은 아닌지,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들보’가 아닌지 때때로 돌아보지 못한다면, 천지간의 큰 말씀은커녕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잃게 될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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