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애니씽 엘스’의 우디 앨런 감독

  • 입력 2005년 1월 27일 15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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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동숭아트센터
사진 제공 동숭아트센터
요즘의 우디 앨런을 보고 있으면 놀라운 것은, 막 칠십에 접어든 이 노감독이 아직도 열정적으로 영화를 찍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칠십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소심증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고, 뉴욕의 작은 커뮤니티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며 섹스에 대한 강박증과 재즈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디 앨런은 여전히 우디 앨런이라는 얘긴데 그래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고 역으로는 그래서 이제 다소 지루하고 동어반복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3년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애니씽 엘스’는 솔직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환대받은 작품은 아니다. 이건 어쩌면 제목을 이런 식으로 정한 우디 앨런 본인 탓이다. ‘애니씽 엘스’. 영화 속에서는 온전히 이런 대사가 나온다. “유 노, 잇츠 라이크 애니씽 엘스(You know, it’s like anything else).” 한마디로 “세상일이란 게 그렇고 그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에 흥미를 갖든 그렇지 않든 우디 앨런은 이제 어깨를 으쓱하며 다 그런 거지 뭐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맞는 말이다.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어쩌면 영리하게도 이 ‘노친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스스로가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 혹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며 살고 있는 얘기를 자신의 ‘알터 에고(alter-ego:분신과 같은 존재)’급 젊은이를 내세워 평소 특성대로 주절주절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번에 그의 알터 에고는 ‘아메리칸 파이’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젊은 배우 제이슨 빅스다. 또 그의 상대역은 ‘꼬마 유령 캐스퍼’에서 ‘몬스터’까지, 곧 아역배우에서 개성 있는 성인 연기자로 올곧게 성장한 크리스티나 리치다.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는 충동적으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뉴욕 지식인들 특유의 사변적이면서도 그래서 더욱더 소심하고 비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외형상으로는 20대 젊은이들의 애정행각처럼 보이지만 이건 궁극적으로 칠십평생 내내 그러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디 앨런의 내면 풍경 그대로다.

우디 앨런 감독

솔직히 얘기하면 우디 앨런의 작가적 ‘에지(edge·신랄함)’는 ‘브로드웨이를 쏴라’ 이후부터 하강곡선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영화까지는 그래도 앨런이, 자신을 포함해 뉴욕에서 살아가는 지식인들에 대한 촌철살인의 씁쓸한 자기반성 같은 모습을 담아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스몰 타임 크룩스’ 같은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작가적 재기를 번득이긴 했으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를 기점으로 비틀린 유머와 냉소주의의 극단을 블랙 유머의 형식으로 담아내던 이 자유주의자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지나치게 순화됐으며 또 지나치게 둔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나이 탓이라고 하면 그것 또한 진부한 비평에 불과한 것일까. 혹시나 순이 프레빈과의 안정적인 삶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아닌 의심도 든다. 역시 예술가는 일상의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과는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씽 엘스’는 우디 앨런이 뉴욕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갖가지 현란한 어휘를 구사하기보다 어찌 됐든 청춘들의 애정문제를 대중적인 관점과 어법으로 풀어내려 노력했다는 점에서만큼은 평가할 만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우디 앨런을 아직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에게는 그의 작품세계에 보다 편하게 입문하게 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작품으로 보인다. 까짓것, 아무려면 어떤가. 잇츠 라이크 애니씽 엘스.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2월 4일 개봉. 15세 이상.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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