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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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따뜻한 ‘관계’가 우리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한 사람의 행복한 미소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맺는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모자이크해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올 한 해, 따뜻한 ‘관계’가 우리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한 사람의 행복한 미소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맺는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모자이크해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2004년, 올 한 해 당신은 무엇 때문에 행복하셨습니까.

불황과 취업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고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게 파였던 한 해.

한국인들은 개인적인 성취감이나 경제적 풍요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등 서로 믿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큰 만족과 위안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크엔드팀은 올해 한국인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하기 위해 기업 컨설팅, 라이프 코치 양성기관인 CMOE 코리아,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벌 리서치와 함께 ‘건강’ ‘가족·친밀한 관계’

‘사회성·대인관계’ ‘일·자기계발’ ‘경제적 상황’ 등 5개 분야의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특정 부문의 만족도가 다른 부문의 불만을 가려버리는 평균적인 행복지수 대신, 얼마나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이 조사에는 서울 경기지역 20∼50대 남녀 830명이 참여했다.》

○ ‘나’ 대신 ‘관계’에서 얻는 행복감

조사 결과 ‘건강’이나 ‘일·자기계발’같은 개인적 영역 대신 ‘가족·친밀한 관계’에서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78점(100점 만점)으로 가장 높았다. 부문별 만족도는 ‘사회성·대인관계’(68점)가 그 다음으로 높았고, ‘건강’(66점), ‘일·자기계발’(64점)의 순서였으며, ‘경제적 상황’(62점)이 가장 낮았다.

최치영 CMOE 코리아 대표는 ‘가족·친밀한 관계’, ‘사회성·대인관계’ 등 삶의 관계지향적인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 점에 주목했다.

“사회가 서구화되고 있다고 해도 한국인의 관계지향적인 특성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독립된 자신보다는 자신이 속한 관계의 안정, 수용성, 조화가 주는 행복감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결과는 지난해 초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한 요건’으로 ‘건강’과 ‘경제적 풍요’가 각각 1, 2위에 꼽혔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올해 사람들을 ‘실제로’ 행복하게 만든 것은 ‘관계’였다

○ 나이 들수록, 여성일수록 삶에 더 만족

나이에 따른 만족도를 보면, 세대별 초상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제적 상황’에서는 최근의 취업난을 반영하듯 20대의 만족도(60점)가 가장 낮았고, ‘가족·친밀한 관계’에서는 40대의 만족도(76점)가 최저점을 기록했다.

최 대표는 “40대가 ‘가족·친밀한 관계’ ‘사회성·대인관계’에서 만족도가 낮은 것은 이들이 청소년기 자녀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직장에서도 ‘낀 세대’라고 불리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전 항목에 걸쳐 만족도가 가장 낮은 연령층은 30대여서 이들이 ‘고민의 세대’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반면 모든 부문에 걸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세대는 50대였다.

‘건강’에 대한 만족도 역시 50대(72점) > 40대(68점) > 20대(66점) > 30대(64점)의 순서였다. 성별로 보면 ‘사회성, 대인관계’ 한 항목만을 제외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또 대체로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전 분야에 걸쳐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뭘까.

행복한 삶을 누리는데 어떤 요소가 가장 결정적인지는 문화마다, 또 평가자들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간의 행복과 관련한 연구들에서 공통된 결과는 독신자보다 기혼자, 내성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들, 자선,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대체로 더 높다는 것이다.

경제력의 경우 돈의 절대 액수보다 남들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게 해줄 때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경향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 유전자가 행복감을 결정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원래 우울한 성향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쌍둥이 4000쌍의 생애를 추적한 결과 유전적 소인이 행복감에 끼치는 영향은 50%인 반면 수입이나 결혼 종교 학벌이 끼치는 영향은 3%에 지나지 않았다.

부, 건강, 자아실현 등 거창한 ‘이상’ 대신, 지극히 작은 일상이 실질적인 행복감을 구성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대니얼 캐너먼 교수팀은 미국 중산층 38세 여성 909명을 대상으로 하루의 시간사용 유형을 재구성한 뒤 어떤 일상 활동이 가장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가를 분석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하루 중 행복한 때는 2시간 42분뿐이다. 친한 사람 만나기, 사교 활동, 휴식, 기도와 명상 등이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활동들로 꼽혔으며 가장 부정적 느낌이 강한 활동은 직장생활이었다. 또 ‘소중하다’고들 하는 배우자와 자녀가 피곤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 중 상위에 꼽혔다. 당위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실제로 행복하게 느끼는 일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조사의 방식을 원용해 시간 사용일지를 기록하고 점수를 매겨 자신이 어떤 활동을 할 때 가장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지를 찾아보면 자신이 ‘실제로 행복하게 느끼는 일’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일 안하고 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시간 사용일지를 적고 각각의 행위에 대한 느낌을 기록해보면 무료한 시간을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하다고 해서 삶의 모든 영역이 24시간 다 충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행복하고, 어떤 면에선 그렇지 않다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아닐는지. 일을 통한 자기실현은 이루었지만 고독할 수도 있고, 돈은 많지만 건강이 나쁘거나 혹은 건강해도 할 일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위크엔드팀이 삶의 만족도 조사에 사용한 5개 항목의 자가 진단표는 추상적인 수치 대신 각 영역에 걸친 만족도를 조사해 ‘균형 잡힌 삶’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다. 원래 미국에서 개발되었으며 CMOE 코리아에서는 개인 컨설팅, 기업 교육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쓰임새에 따라 항목은 8개 이상이 될 수도 있지만 조사를 위해 5개 항목으로 축약했다.

최치영 대표는 “특별히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 개선에 집중하고, 각 항목의 점수가 균등하지만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낮을 경우 삶의 의욕 자체가 떨어진 원인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돌아보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4년 삶의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기간·대상=13∼15일 서울, 경기지역 830명

▽성별= 남자 459명 여자 371명

▽연령별=20대 230명, 30대 280명, 40대 216명, 50대 104명

▽연소득별=3000만원 미만 417명, 3000만∼5000만원 307명, 5000만원 이상 106명

※ 평가항목 개발, 설문조사 진행= CMOE 코리아, 글로벌 리서치

글=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2004 삶의 만족도 자가진단▼

2004 삶의 만족도 자가진단
건강전혀아니다대체로아니다보통이다대체로그렇다매우그렇다
1.나는 정상적인 체중을 유지한다

2.나의 혈압은 정상이다

3.나는 피곤함을 잘 느끼지 않는다

4.나는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다

5.나는 지나친 술 또는 담배를 하지않는다

6.나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다

가족·친밀한 관계전혀아니다대체로아니다보통이다대체로그렇다매우그렇다
1.나와 상대방은 서로 신뢰하고 있다

2.나와 상대방은 서로의 생각,행동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3.나와 상대방은 긍정적 대화를 많이 한다

4.나와 상대방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잘 표현한다

5.나와 상대방은 의견충돌이 있더라도 잘 해결한다

6.나와 상대방은 서로 협력한다

사회성·대인관계전혀아니다대체로아니다보통이다대체로그렇다매우그렇다
1.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2.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편이다

3.나는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4.나는 봉사활동에 참가한다

5.나는 주위사람들과 관계가 원만하다

6.나는 사회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일·자기계발전혀아니다대체로아니다보통이다대체로그렇다매우그렇다
1.나의 삶의 목표는 지금의 일과 관련이 있다

2.나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3.나는 현재 하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않는다

4.나는 시간관리를 잘 하고 있다

5.나는 스스로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

6.나는 지금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

경제적 상황전혀아니다대체로아니다보통이다대체로그렇다매우그렇다
1.나는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

2.나는 지출보다 수입이 많다

3.나는 부채보다 자산이 많다

4.나는 신용평점이 높은 편이다

5.나는 재정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준에 와 있다

6.나는 목표를 세우고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테스트 요령:‘전혀 아니다’∼‘매우 그렇다’에 왼쪽부터 각각 1, 2, 3, 4, 5점을 주어 항목별 평균 점수(합계 ÷ 6)를 계산한다. 여기에 20을 곱한 수치를 아래 도형의 해당하는 위치에 표시한 뒤 각 표시를 잇는 선을 이어본다. 선으로 연결된 원이 원만하고 클수록 만족도가 높고 균형 잡혔음을 의미한다.

▼“인생 반전 드라마 펼쳤어요” 2004년이 행복했던 3人▼

○ 꿈을 설계하며 행복한 조성실 씨(21)

신구대 사진영상미디어과 2학년인 조성실 씨는 내년 졸업 후 인문계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려면 우선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올 가을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이 주최한 대학생 창업경진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주경야독’ 형 학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1년을 되돌아보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정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2002년 부모의 사업이 실패한 뒤 그는 오빠와 함께 인터넷에서 신발, 의류를 팔기 시작했다. “모르는 어른들을 찾아가 협상하고 거래를 트는 등의 일이 처음엔 너무 싫었는데 일을 성사시키는 경험을 쌓다보니 불투명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경쟁자가 끝없이 나타나는 인터넷 판매의 특성상 어디가 틈새시장인지를 살펴보는 전략적 사고도 얻게 됐다.

해외 공급처를 개척하려다 실패한 지난해는 암울했지만 올해는 유행하는 패션소품을 옮겨가면서 판매하는 전략으로 사업도 안정 궤도에 올랐다.

동년배보다 일찍 현실에 뛰어든 것이 되레 그에겐 꿈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해 말 “당장의 경제적 문제가 없다면 경영을 배워 사업하는 것, 사진작가를 하는 것에서 무엇을 선택할까”를 고민했고, 마음이 후자로 기울자 “늘 그래왔듯” 직접 현실과 부딪쳐 알아보기로 했다. 올해 초 사진 관련 월간지에 기고를 시작하고 여름에 캄보디아 촬영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는 미래를 설계했다.

그는 “취업이 어렵고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결심은 날벼락처럼 생기는 게 아니라 계속 모든 일을 찔러봐야만 얻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 내 일 찾고 건강까지 좋아진 이상현 씨(27)

23일 막이 오른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에서 에스메랄다와 사랑에 빠지는 장교 푀버스 역을 맡은 배우 이상현 씨.

182cm, 78kg의 훤칠한 체격이지만 1년 전 그는 몸무게 90kg에 온갖 성인병 증세를 달고 살면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영화 ‘슈퍼 사이즈 미’에서 햄버거만 먹고 살아서 건강 나빠진 미국 감독 있잖아요. 1년 전 제가 딱 그 꼴이었어요.”

성악을 전공했지만 별 의욕이 없고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지하철 행상, 여행사 가이드, 공연기획사 등 온갖 일을 전전하다 지난해 그만뒀다. 막연하게 뮤지컬 배우가 부러웠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올해는 “활짝 핀 해”다. 1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렌트’를 거쳐 ‘노틀담의 꼽추’에서 준주연급 배역을 맡은 것. 그에게 전환의 계기는 어떻게 찾아왔을까.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고 빈둥거리다가 공연 기획할 때 알게 된 연출가 선생님께 전화를 했어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산에 다녀와라’ 하시더라고요.”

등산을 싫어했지만 속는 셈 치고 지난해 가을 무작정 태백산에 갔다. ‘아무도 안 보는데 그냥 돌아갈까’하는 유혹과 싸우느라 남들보다 몇 배나 시간이 더 걸려 정상에 올랐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힘들 때마다 도망가는 걸 반복하며 살아왔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배수진을 쳐야 한다는 것”을.

가슴 설레는 일을 하기 위해 공들여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살도 뺐다. 지금은 매일 오전 고전발레, 재즈댄스 등을 배우며 운동을 한다. 지금 수입은 1년 전의 4분의 1밖에 안되지만 그는 “1년 전보다 지금 2배는 더 행복하다”고 한다.

○ 부도 후 재기에 성공한 박경환 씨 (41)

지난달 효모추출물 화장품 브랜드 ‘메리스떼’를 론칭한 ㈜메리스떼의 박경환 대표. 그에게 1년 전 근황을 묻는 건 다소 잔인한 일이었다.

여성의류 수출업을 하다 2년 전 부도를 맞은 뒤 아파트와 전 재산을 처분하고도 5억 원이 넘는 빚더미에 앉았다. 지난해 초 사글세 30만 원을 낼 돈조차 없을 땐 피눈물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몹시 아끼던 둘째 형이 지난해 추석 때 갑작스레 목숨을 잃었고, 홀어머니도 치매에 걸렸다. 처남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사는 게 뭔가’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고 했던가. “친한 선배가 지난해 하반기에 ㈜두산 바이오텍BU의 여드름 치료화장품 유통회사를 만들면서 연락을 해왔어요. 건강이 몹시 나쁘니 좀 도와달라면서요.”

내수 경험이 없어서 망설였지만 “부딪히면 돌파구가 생긴다”고 했던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올해 초 선배 회사에 합류했다.

올해 1년은 그에게 새 출발의 시기였다. 두산 바이오텍BU로부터 신뢰를 얻어 지금의 화장품 회사를 출범시켰고, 10년간 수출을 하며 알게 된 일본 중국 베트남의 바이어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수출 판로도 만드는 중이다. 지난달 매출은 5억 원가량. 이달엔 7억원 가량 예상하고 있다.

아직도 개인 빚이 다소 남아있긴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데 성공한 그는 ‘세계를 상대로 한 세일즈’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있다.

그는 “경제적 실패가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를 알고 난 뒤라”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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