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大安門→大漢門 변경 오해와 진실

  • 입력 2004년 6월 21일 18시 40분


6월 초 수리에 들어간 덕수궁(경운궁) 대한문은 일제침략과 관련해 그 이름에 관한 오해에 시달려왔다. 건립 당시 이름인 대안문(大安門)에서 1906년 지금의 대한문(大漢門)으로 바뀐 것을 둘러싸고 여러 억측이 있었던 것.

안(安)자를 한(漢)자로 고쳐야 국운이 창성할 것이라는 도참설을 믿고 고쳤다는 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고종을 겨냥해 불한당의 뜻을 지닌 ‘한(漢)’으로 바꿔 ‘큰 불한당이 사는 문’이라고 비아냥댄 것이라는 설 등이다.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는 고종의 명으로 1906년에 쓰인 ‘경운궁 중건 도감 의궤(慶運宮重建都鑑儀軌)’의 기록을 근거로 이 같은 억측들을 일소했다. 의궤의 한 구절이 ‘대한(大漢)은 소한(소漢·하늘)과 운한(雲漢·하늘)의 뜻을 취한 것’이라‘황제는 천명(天命)을 받아 유신(維新)을 도모하여 법전인 중화전(中和殿)에 나아가시고, 다시 대한정문(大漢正門)을 세우셨다’며 대한문의 의미를 밝혀놓은 것.

한 교수는 “하늘에 제를 올리는 일은 황제만이 할 수 있다”며 “대한문은 본디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며 하늘을 향해 제를 올렸던 원구단((원,환)丘壇·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자리)을 향하고 있었기에 큰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도 “경운궁 중건 도감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대한제국의 광영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이설(異說)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독립문의 글씨를 매국노 이완용이 썼다며 비판하는 데 대해 이완용이 당시 독립협회 초대 위원장 자격으로 쓴 사실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독립협회는 고종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졌고, 독립문을 세울 당시 이완용은 친일파가 아닌 친러파로서 고종의 뜻을 받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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