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구려사를 잃는다면…

  • 입력 2003년 12월 10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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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정치인들이 연일 ‘네 탓 싸움’을 벌이고, 남북이 북한 핵문제로 엉거주춤하는 사이 중국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바로 고구려사 빼앗기 작업이다. 원두막 안에서 서로 맛있는 과일 먹겠다고 싸우고 있는 동안 그 원두막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뿌리 하나가 우지끈 소리 내며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기둥이 무너지면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고구려사를 잃는다면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개척했던 광개토대왕-장수왕,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쳤던 을지문덕과 양만춘 장군 등은 우리 조상이 아니라 중국사 속의 인물이 될 것이다.

중국 당나라를 건국한 고조(高祖)는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때 붙잡힌 포로들을 돌려보내달라며 622년 고구려 영류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 두 나라(고구려와 당)가 화평을 통하게 되었으니…”라고 쓰고 있다. 고구려와 당나라는 서로 다른 두 나라였던 것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도 이미 삼국을 한국사의 범주로 다뤘다. 그래서 ‘이국사기’나 ‘이국유사’가 아니라 ‘삼국사기’, ‘삼국유사’였다.

중국은 이미 발해사를 잠식해 왔고 이젠 고구려사를 먹겠다고 한다. 고구려사 귀속 정책이 완료되면 역사 체계상 다음은 고조선 차례다. 우리의 건국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마저 중국사 속의 인물로 편입시키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중국이 이 같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설 경우 동북(만주)지역이 한반도와 연결되는 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란 사실은 쉽게 짐작이 간다. 나아가 불투명한 김정일 정권의 앞날에 대비해 유사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해 두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역사적으로 중국에 천하를 통일한 강력한 국가가 들어서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할 때, 중국은 늘 우리 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왔다. 7세기 삼국통일기에도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삼키려 하자 신라가 이에 대항해 나당(羅唐)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중국이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급속히 성장해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오늘날 우리는 제2의 나당전쟁을 전개해야 할지도 모를 사태를 맞고 있다. 당시는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었다면 이젠 역사를 둘러싼 전쟁이다.

당면 과제는 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북한을 돕는 일이다. 이 총회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벽화는 등재되고 북한의 것은 등재되지 않는다면 고구려사는 중국사로 넘어갈 공산이 커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한은 힘을 합쳐야 한다. 남북한 학자들은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공동답사하고 연구해 그 결과를 세계에 알리고,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네티즌들도 역사 왜곡 시정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독도는 우리 땅’이란 대중가요가 나왔듯이 이젠 ‘고구려는 우리 역사’란 노래가 나와야겠다. “원나라는 중국사, 청나라도 중국사, 고구려는 한국∼사….’

윤정국 문화부장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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