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를 이어가는 옹기장이 가족

  • 입력 2003년 5월 21일 15시 28분


"어릴 적부터 흙을 이겨 장독을 굽는 일을 배웠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다시 하기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신문을 돌리며 요리학원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 몸에는 옹기장이의 피가 흐르나 봐요."

경기 여주군 금사면 이포2리 '오부자 옹기'는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7대를 이어가며 옹기를 만들어온 김일만(金一萬·62)씨와 아들 4형제의 일터.

한때 "지긋지긋하다"며 집을 뛰쳐나갔던 셋째 창호(昌鎬·34)씨는 "이제 흙의 정직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대로 전통 옹기를 만들며 살아온 가족의 삶과 애환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창호씨의 '옹기의 길'이라는 글이 올해 처음 실시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기능장려 수기 공모전에서 21일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부친 김씨는 다른 길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골수' 옹기장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4대조 할아버지가 박해를 피해 산으로 들어가 옹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꽤 이름이 알려져 1996년 기능전승자로 인정받았고 지난해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그의 네 아들도 가업(家業)을 이었다. 큰아들 성호(成鎬·40), 셋째 창호, 막내 용호(龍鎬·28)씨가 한 지붕 아래서 독을 빚고 둘째 정호(正鎬·37)씨는 인천으로 '스카우트'돼 나갔지만 가마 일을 할 때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막노동보다 힘든 일이라 이들의 몸도 성한 데가 없다. 첫째와 둘째는 발로 물레를 하도 돌려 짝발이 됐고, 막내는 옹기를 져 나르느라 목뼈가 휘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옹기만 만들어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부친 김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입대했다가 첫 휴가를 나와 보니 입에 풀칠도 못하고 있어 부대에서 남는 밥과 반찬을 얻어다 먹인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창호씨는 "플라스틱 용기에 바이오세라믹까지, 요즘엔 김치냉장고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 몇 년 전부터는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둘째 정호씨는 아파트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생활옹기, 창호씨는 조경용 옹기를 주로 만든다. 그래도 첫째와 막내는 부친의 고집으로 전통 옹기에 매달린다.

창호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올해 여주대 도자기과에 입학했다. "가장 훌륭한 스승인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옹기 제작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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