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김순덕/여기자 20년, 행복한 '뉴스 전하기'

  • 입력 2003년 3월 3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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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문 수습기자들을 교육하는 자리였다. 콘택트렌즈를 낀 여기자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기자는 24시간 근무인데 눈 때문에 고생하겠다”는 얘기 끝에 말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것 두가지 중 하나가 라식수술을 받은 거였어요.”

질문시간에 한 후배가 또 한가지는 뭐냐고 물었다. 나는 속살을 내보이는 것 같아 조그맣게 말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된 거요.”

▼‘동아 정신’ 지키려 노력▼

내가 동아일보 기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오만가지에 관심이 많고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로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이 직업을 갖게 된 것이 굉장한 행운이었다.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사회부터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섬까지,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산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문화가 ‘뉴스 전하기’다. 사람들은 발빠른 똘똘이를 저쪽에 보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고 와서 말해달라고 했다.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미국의 역사학자 미첼 스티븐스는 진작에 갈파했었다.

그 발빠르고 똘똘한 사람들이 지금의 기자다. 기자가 되어 선배들로부터 제일 많이 들은 소리도 “기사는 발로 써야 한다”는 거였다.

데스크와 선배들은 귀신이었다. 그들은 내가 보도자료에 의존해 앉아서 기사를 썼는지, 이사람 저 사람 만나 캐물어봤는지 원고만 보고도 단박에 알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특권이 기자에게 주어진 것은 그 정보를 충실히 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걸 안하고 못하는 건 독자에게 죄를 짓는 일이었다.

선배들이 강조한 또 한가지가 ‘확인’이다. 독자들이 동아일보에서 봤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믿을 수 있도록 우리 기사는 정확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게 과연 진실인지, 동아일보 기자는 독하게 취재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여기엔 여기자 남기자의 구별이 없어서 제발 남녀차별 좀 해주었으면,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힘있는 자의 완력을 비판 견제하고 목소리 작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까지 균형있게 전달하는 것은 동아일보에 목숨건 선후배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동아일보가 어떤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는 항공모함같은 위상을 구축한 것도 83년의 역사와 전통에 서린 불편부당 시시비비의 동아정신 덕분이었다.

인터넷이 토해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뢰받는 신문 동아일보’의 가치가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과 의견 또는 편견이 뒤섞인 여러 매체의 잡다한 정보와 달리, 우리 신문은 무엇이 진실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동아일보’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보증한다. “김순덕씨는 동아일보 기자야”라는 말은 언제나 가장 무서운 채찍이었다.

▼미디어 글래디에이터가 꿈▼

지난해 여름 나는 논설위원이 되었다. 우리 기자들이 전해준 뉴스에 나의 시각과 의견을 담아 내 빛깔로 전하는 칼럼을 쓸수 있어 이게 무슨 복인가 싶다.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논설위원이라고 하지만 나는 가볍고 말랑말랑한 ‘여성적 소재’에 나자신을 묶어두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 사회의 주류인 남성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에 달라들어 나만의 예리한 칼로 핵심을 찌르는 미디어 글래디에이터가 되는 게 나의 꿈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월급까지 받으며 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좋은 글을 못내놓을 때만 빼놓고.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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