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응의 미술과 시장 18]뉴욕 가을 경매 참관기 2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7시 14분


뉴욕 가을 경매 참관기 2

경매에서 낙찰이나 유찰은 작품의 완성도, 가격, 경매사의 진행솜씨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컬렉터들의 날카로운 눈은 역시 보다 훌륭한 작품에 쏠렸다. 모딜리아니의 비슷한 작품이 두 경매회사에 한 점 씩 출품됐는데 소더비에서는 추정가를 웃도는 800만달러에 낙찰된 반면 크리스티의 출품작은 유찰됐다.

1320만달러로 현대미술쪽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드 쿠닝의 ‘오레스테스’는 같은 시리즈의 흑백 추상작품 9점 중 6점이 이미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작품의 질과 더불어 희소성이 높은 가격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미술시장의 중심이 작품면에서는 인상파 및 근대에서 현대미술 쪽으로, 지역적으로는 구매세력이나 새로 부상하는 작가들이 유럽에서 미국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드 쿠닝 외에도 앤디 워홀의 많은 작품이 무난히 소화되었으며 쟈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바넷 뉴만 등 다른 미국작가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현대미술의 낙찰가액이 사상 최고에 이르러 인상파 및 근현대 작품 낙찰가액과 비슷했다. 여기에는 거스키, 스트루스, 루프 등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사진작가들도 일조를 했다.

사실 미술시장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이미 제 1,2차 세계대전 전후에 시작됐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거나 추방당한 유태인을 중심으로 화상, 컬렉터, 평론가, 화가들은 미국 미술을 꽃 피우는데 밑거름이 됐다.

당시 미국으로 건너온 화가는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페르낭 레제, 피에트 몬드리앙, 앙드레 부르통,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미술시장을 지배하던 화상 빌덴스타인, 로젠버그, 셀리그만 등도 활동무대를 뉴욕으로 옮겼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미국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예술품을 사들일 만한 부를 축적했고 유럽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열정 또한 대단했다. 정부도 발벗고 나서 미술품 구입과 미술관에의 기증에 각종 세제혜택 등을 통해 지원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때 많은 예술가에게 매주 23달러86센트를 지급했다. 대신 작가들은 2개월에 1점씩 정부에 작품을 제출했다. 이 제도은 1935년부터 43년까지 시행됐으며 정부가 사들인 작품은 10만점을 넘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은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지옥의 불길처럼 끓어오를 만한’ 여건을 만들어 줬으며 세계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아오게 만들었다.

서울옥션 대표이사 soonung@seoulau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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