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자연주의 조경디자이너 오웅성씨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26분


《광활한 대지와 하늘, 이슬 머금은 풀잎과 꽃향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그가 자연이라는 캔버스에 그린 상상화는 어머니 젖가슴처럼 아늑한 모두의 ‘공간’이 된다.

삼성 에버랜드 환경디자인센터 오웅성(吳雄星·42) 소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덕단지 조경설계(1987)를 시작으로 신도시 공원의 ‘모델’이 된 분당중앙공원(1990), TGB동유럽선 조경기본설계(1993), 대전엑스포과학공원 리모델링(1999), 파리서울공원 설계(2000), 최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조경 설계(2002)까지…. 한국 조경계의 대표적인 자연주의자로 꼽히는 그의 작품에는 살포시 웃는 시골 처녀의 순수함 같은 것이 스며 있다.

결혼 날짜까지 잡은 약혼녀를 뒤로한 채 3단 이민 가방 하나를 들고 홀연히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촉망받던 청년 조경가의 열정. 센강 대운하를 바라보며 ‘내 혼 깊숙이 당신들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겠다’고 다짐한 6년 뒤 ‘프랑스 조경학 박사학위 1호’를 기록한 집념. 조경을 음악이나 의상, 심지어 누드 예술과 ‘뷰티(Beauty)산업’과도 연관짓는 엉뚱한 발상.

올 3월 파리 아클리마타스옹 공원 내 1400여평 부지에 들어선 파리서울공원.오웅성 소장이 디자인한 이 공원은 중국, 일본과는 다른 신비한 동양 문화를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세 계유명 패션 잡지의 촬영 장소로 애용되고있다./사진제공 삼성 에버랜드

나무와 돌덩어리로 정원을 꾸미는 정도를 ‘조경’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견은 그를 만난 지 몇분 만에 무너져 내렸다. 군데군데 갈색 블리치를 넣은 긴 파마 머리, 사무실 곳곳에 걸려 있는 스스로를 모델로 찍은 각종 전위예술 사진까지…. 상상했던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조경’을 설명하기 위해 시종일관 인간과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쏟아내는 그의 열정에 숨이 막혔다.》

#조화(調和)의 미학, 익스테리어(EXTERIOR)

조경, 즉 ‘익스테리어’는 건물 내부를 꾸미는 ‘인테리어’의 상대 개념. 의학에 내과, 외과가 있듯이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시공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라면 건물 바깥의 모든 공간은 조경가의 영역이다.

그가 말하는 조경가는 건축물을 풍경 속에 어울리게 만드는 코디네이터. 건물 자체의 미적 효과를 고민하면서 세세한 부분을 살피는 것이 건축이라면 조경은 디테일한 것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를 생명으로 여긴다.

타워팰리스 조경도 그의 작품. 삼성그룹 계열사의 역량이 총동원된 초고층 아파트 타워팰리스는 삼성 에버랜드 환경디자인센터 소속 디자이너뿐 아니라 미국 굴지의 조경 설계회사인 SWA 소속 등 외국 디자이너 수십명이 조경 설계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타워팰리스는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신개념의 초고층 주거 공간이죠. 기존의 주상복합 건물과는 전혀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숲의 개념을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초고층 빌딩이 밀집된 뉴욕 시내 중심에 센트럴파크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뉴욕 중심부 경관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키 큰 나무 숲을 구현하기 위해 40∼50년생 대왕 참나무 수백그루를 심었고 중층부와 하층부에는 4계절을 느낄 수 있는 꽃피는 나무를 심어 숲을 꾸몄다. 보통 아파트 단지의 경우 조경 비용이 나무값과 시설물, 조형물까지 포함해 평당 40만∼60만원선. 타워팰리스의 경우 나무값만 50만원 이상이 들었다.

올 3월 개장한 파리서울공원도 역작 중의 하나. 19세기 말 파리 중심부에 만들어진 5만평 규모의 아클리마타스옹 공원 내 1400여평 부지에 들어선 파리서울공원은 서울시와 파리시의 자매결연 기념으로 조성됐다.

“한국과 프랑스의 기술력이 조합이 된 공원이라는 데 의미가 있죠. 전체 그림은 제가 그렸지만 둔덕과 호수를 만드는 토목 공사와 나무를 심는 공사는 프랑스 업체가 했어요. 다만 전통에 관계된 정자나 담 등은 한국의 기술자가 화강석과 돌, 목재 등 자재를 가져가 조립했습니다.”

파리서울공원은 개장 후 화제가 됐다. 그동안 유럽인들이 봐온 중국이나 일본문화와는 차원이 다른 동양문화를 경험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격조 높은 전통적인 담을 재현한 ‘한국의 꽃담’은 시공이 유럽 패션 전문지 ‘파리 모드’와 ‘마담 피가로’ 등에 소개됐고 유명 모델들이 사진을 찍는 촬영 명소가 됐다.

#‘르노트르’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다

그는 스물아홉살에 분당중앙공원을 설계했을 정도로 촉망받던 청년 작가였지만 늘 배움에의 갈망에 공허했다. 유학을 결심한 것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 당시 환경대학원 교수진은 대부분 하버드대나 뉴욕대에서 학위를 받은 미국통으로 그 역시 미국 유학을 생각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미국 조경에 거부감이 생겼다.

“한국인의 조경에 대한 이미지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나 센트럴파크와는 분명히 다르죠. 시장원리에 좌우되는 조경의 미국적인 속성, 결정론적인 논리에도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가 프랑스로 건너간 1990년만 해도 유럽 조경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유학알선업체를 통해 파리에 ‘국립조경학교’가 있다는 정보를 얻은 그는 무작정 편지를 보냈다. 그때 나이 서른. 유학을 가기엔 늦은 나이인 데다 이미 결혼 날짜까지 받아놓은 약혼녀가 있었다. 몸담고 있던 쌍용엔지니어링에서도 “더 배우고 싶다면 중국이나 미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그는 숙고 끝에 거절했다. 그리고 3단 여행용 가방 하나를 끌고 홀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프랑스에 도착한 그는 센강 변을 거닐며 결심했다. 프랑스 조경 문화의 원조로 추앙받는 거장 르노트르가 설계한 대운하를 바라보면서 “콧대높은 당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빨아들여 돌아가겠다”고 외쳤다.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에서 조경최고과정을 1년 만에 수료하고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건축사과정에 들어갔으며 6년 뒤 파리 국립사회과학대학원에서 건축 및 조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최초의 조경학 박사였다. 40명 중 1등의 성적이었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파리수도권개발연구원과 라빌레트건축학교 환경설계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고 TGV 동유럽선 조경 기본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마음이 경관을 바꾼다

그가 말하는 조경은 거창하지 않다. “거리에 핀 들풀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게 조경이지요. 요즘 많이 하는 베란다 정원이나 실내 정원은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해요.”

한참 얘기 중에 거리의 간판 얘기가 나왔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간판이야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전문가의 시각이 궁금했다.

“경관에 대한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어요. 광고법 등 법규를 엄격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우리는 ‘경관을 읽는다’고 표현하는데 간판을 보면 ‘내가 먼저야’라는 우리의 가치관이 그대로 읽힙니다. 무조건 튀려고 하고, 내가 먼저 보여야 한다는 의식이 투영돼 있죠. 남을 배려하고 전체 속의 한 부분으로서 나를 인식하는 선진국에서는 설사 법이 까다롭지 않더라도 우리와 같은 간판은 등장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포부는 우리 시대의 문화상을 반영한 새로운 조경의 형태를 개발하는 것. 모두들 갖고 있는 휴대전화처럼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대중화된 조경’을 구현하는 것이 꿈이다.

“백년 뒤 후손들이 2002년에는 디지털이 발달했는데, 왜 당시 조경에는 반영이 안 됐을까 의아해할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 전혀 다른 차원의 조경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백남준 선생이 비디오아트를 만들어낸 것처럼…. 그런 날이 오겠죠(^^).”dreamland@donga.com

▼오웅성씨는…▼

△1960년 경북 포항 출생 △1986년 성균관대 조경학과 졸업 △1989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환경조경학) △1991년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조경최고과정수료) △1997년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건축사 과정 △1998년 파리 국립사회과학대학원 건축 및 조경학 박사 △1999년 삼성 에버랜드 환경디자인센터 소장 △주요 조경 작품(분당중앙공원, TGB동유럽선,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리모델링, 도곡동 타워팰리스,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파리서울공원 등)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오웅성씨가 꼽은 조경 베스트 10▼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원을 조성하고 환경을 복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오웅성 박사가 추천하는 ‘아름다운 조경 베스트 10’을 통해 지역 명물이 된 공원들의 조경 포인트를 살펴보자.

①분당중앙공원〓분당신도시의 상징 공원으로 자연성이 돋보인다. 기존의 산과 수목에다 전통 가옥을 보존했고 안압지 형태를 재현한 인공호수도 눈에 띈다. 레크리에이션을 할 수 있는 수내(숲안)마당과 황새울 광장을 갖춰 도시 공원의 기능도 살렸다.

②올림픽공원〓역사성이 돋보이는 기념공원. 백제 초기 위례성 시대의 토성과 해자를 훌륭하게 재현했다. 수경관(水景觀)도 아름답지만 세계적인 작가들의 조각을 비치, 조각 예술 공원의 성격도 띠고 있다. 산책하기 좋은 공원.

③월드컵공원〓대규모의 인공 호수와 단풍나무 길이 포인트. 산책과 인라인스케이트 등 레포츠에도 좋은 공원이다.

④한강 선유도공원〓아주 재미있는 공원이다. 과거에 정수장이 있었고 기존의 정수장 시설인 수조와 연못, 건물의 기둥, 벽체 등을 정원의 오브제(호기심의 대상)로 삼아 만들었다. 설계자의 부지 조건에 대한 해석이 돋보이며 ‘시간의 정원’ 등 은유성이 뛰어난다.

⑤타워팰리스 조경〓신주거문화에 어울리는 명품 아파트 조경. 마천루의 건축 경관에 어울리는 숲 개념의 조경이다.

⑥양재천〓환경복원의 관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연구되고 시도된 ‘버드나무가지 공법’ 등이 시도됐다. 생태학적인 의미도 크고 자연형 하천의 시금석이라는 가치가 있다.

⑦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서울의 도심에서 더 이상 사라져서는 안될 생태적인 면면들이 보존되고 재현됐다. 양재천이 도시민에게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면 이곳은 교육적인 의미가 강하다.

⑧일산호수공원〓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조성된 대규모 공원. 특징은 거대한 인공호수를 조성했다는 점이다. 인공호수는 조성 당시 논란과는 달리 현재는 명물이 되어 있다. 분당중앙공원과는 다르게 모던풍의 레크리에이션 공원의 특색이 강하다.

⑨여의도공원〓미적인 측면보다는 조경사(史)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광장을 공원 녹지로 조성했으며 전통적인 정자와 계류(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연못, 청소년들을 위한 레포츠 광장, 생태 숲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⑩가나아트센터(서울 평창동)〓나무 정원이며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체적으로 나무로 조성해 친근한 분위기를 준다. 공연 등 문화공간에 어울리는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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