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기’ 세계 名品속으로…‘박영숙 窯’ 뉴욕에 전시관

  • 입력 2002년 12월 4일 17시 46분


박영숙씨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도자기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영대기자
박영숙씨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도자기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영대기자
로열 코펜하겐(덴마크), 레녹스(미국), 로열 덜튼, 웨지우드(영국), 헤런드(헝가리), 크리스토플(프랑스)…. ‘도자기 세트’하면 떠오르는 이른바 ‘명품’ 브랜드는 대부분 외국 제품이다. 몇 년 전 만해도 부잣집 혼수품으로 한국의 명품들이 인기를 얻었으나 요즘은 서양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상당히 잠식한 상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명품브랜드를 갖고 있는 한국이 ‘생활 자기’ 분야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외국 명품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국 도자기 산업계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청화백자로 유명한 ‘박영숙 요(朴英淑 窯)’의 작가 박영숙씨(55)가 미국 뉴욕 매디슨가에 10일 60여평 규모의 전시실과 매장을 개관해 세계의 명품들과 겨루게 된 것.

박씨의 매디슨가 전시실 개설은 단순히 ‘미국 진출’의 의미가 아니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는 세계의 명품브랜드가 모여드는 거리. 여간해서는 매장이 나오지도 않지만 매장을 열기 위해서는 거리의 ‘수준’을 생각하는 인근 상인조합의 까다로운 심사와 동의를 거쳐야 한다. 박씨가 그곳 사정을 잘 아는 지인의 도움까지 얻어 전시실을 여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그나마 제 도자기가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졌던 것이 도움이 됐어요.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을 때 제 매장에 들렀던 것도 실은 여왕의 사촌이 이전부터 저희 찻잔 세트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의 말대로 ‘박영숙 요’는 별다른 홍보가 없이 국내 부유층을 통해 외국에 알음알음으로 소개돼왔다. 도자기 제작, 판매사업을 하던 남편에게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운 박씨는 1979년 자신의 브랜드를 냈다. 이후 1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89년 비로소 조선시대 관요(官窯·왕실 도자기)의 백자 빛깔을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생활 자기는 누구나 만들 수 있잖아요. 저는 세계의 왕실, 귀족이 쓰는 최고급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뉴욕 전시관의 성공 여부를 떠나 꿈이 절반쯤은 이루어진 셈이죠.”

박씨는 10년간 임대 계약한 뉴욕 전시관의 운영비로 연간 150만달러(약 18억원)가 든다고 했다. 그는 “충분히 그만한 운영비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제 브랜드를 판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아름다움을 파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옛 도자기의 멋을 제대로만 재현한다면 서양 제품에 밀릴 이유가 없죠.”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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