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음반]변함없는 ‘이기찬표 발라드’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23분


/사진제공 유리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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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기찬(23)은 늘 조용하다.

나대지도 않고 대화할 때 목소리도 크지 않다. 웃고 싶을 땐 ‘피∼익’하고 만다. 박경림 강타 성시경이 동갑으로 자주 어울리나 그곳에서도 이기찬은 있는둥 마는둥이다. 한마디로 연예인중 가장 연예인답지 않다.

그런 성격 때문에 그는 ‘가창력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크지 않다’는 평도 듣는다. 그렇지만 그가 96년 데뷔 이후 한눈팔지 않고 음악으로만 쌓아온 신뢰가 지난해 5집에서 결실을 맺었다. ‘또 한번 사랑은 가고’를 타이틀로 내세운 5집은 37만장이 나갔다.

그는 최근 6집을 발표했다.

새 음반은 발라드 가수로서 이기찬의 회심작같다. mp3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20곡 가까이 수록하는 요즘 추세와 달리 10곡만 엄선해 실었다. 이중 8곡이 발라드이지만 그 결이 팝이나 재즈, 리듬앤블루스 등으로 모두 다르다. 마치 ‘이기찬표 발라드’를 내놓은 듯하다.

타이틀곡 ‘감기’(작사 작곡 이기찬)은 ‘또 한번 사랑은 가고’의 목소리 톤을 연상시키지만 애틋한 슬픔을 목소리에 담아내는 솜씨에서 원숙미가 전해진다. 감기는 사랑의 열병에 대한 비유다.

“녹음은 20곡을 했는데 10곡을 버렸어요. 그만큼 자신있게 내 노래를 권한다는 뜻도 되고, 모든 노래가 타이틀곡이예요.”

그는 세달을 꼬박 녹음실에 살면서 같은 노래를 수십번이나 다시 불렀다. 노래의 완성도에 대해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으면 두말않고 엎었다.

수록곡은 온기를 가습기처럼 뿜어내는 ‘사랑을 믿어요’, 펑키와 재즈 리듬이 가미된 ‘킬러’, 리듬앤블루스 계열의 ‘이연(異緣), 민요적인 멜로디에 강렬함이 엿보이는 ‘내탓’, 디스코 풍으로 그룹 ‘비지스’를 연상시키는 ‘고백하는 날’ 등. 이기찬은 이들 노래의 곳곳에서 목소리를 다채롭게 변주해가고 있다.

“노래할 때 기교를 배제했어요. 기교가 많으면 듣긴 좋지만 금방 싫증납니다. 노래에 나의 감정을 듬뿍 담으려 했어요.”

이기찬은 올해 4월 한달간 혼자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누비면서 나그네의 고독을 몸에 담아 왔다. 이번 음반에 감정이 풍부해진 것은 여행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대 후반에 데뷔해 모두 6장의 음반을 내는 동안 다뤄온 주제는 줄곧 사랑과 이별이다. 때론 지루해할 것 같은데….

“다른 주제는 생각해본 적 없어요. 사랑과 이별이 곧 사람사는 이야기이니까요.”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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