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⑥]웃기는 소리 웃기는 사회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36분


우리말 ‘웃긴다’는 사뭇 떨떠름하다. ‘야, 웃기지 마!’ 이렇게 소리치면, 돼 먹지 않은 수작하자 말라는 거다. ‘웃긴다’고 할 때의 그 웃음은 코웃음이고 비웃임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부분적으로 ‘웃기는 사회’가 되었다면 망발일까?.

웬 아주, 아주부호가 직장에서 남의 부고(訃告)를 받았다. 일하다 말고 작업복 입은 채로 상가로 달려갔다.

호상(護喪)군들이 그를 못 알아보았다.초상집 강아지 꼴이 된 그는 마음 고쳐 먹고는 사람을 시켜 정장(正裝)을 가져오게 했다.

이번엔 그 앞에 푸짐하게 잘 차려진 상이 놓였다. 한데 그는 예복을 차곡차곡 벗고는 내의 바람이 됐다.

벌레 씹은 꼴의 호상군에게 말했다.

“너희들 어디 나보고 대접한 건가? 옷보고 한 거지!”

한데 말이다. 몇 해 전, 대단히 높은 벼슬자리에 앉은 한 귀인의 어부인께서비싼 옷을 , 그것도 밍크인지, 뭔지 하는 짐승의 털옷을 뇌물로 받아 챙겼느니 안 챙겼느니 말썽이 났다.

“난 그 옷 입어보진 않았다. 어디 외출할 때, 걸쳐 본 것뿐이다.”

그녀의 해명은 ‘웃기는 이야기’였다. 세상이 온통 고소(苦笑)했다.

외국에서는 돈 많은 집 부인들은 사교계 나들이를 할 때, 그 비싼 털옷은 살짝 걸치는 게 관행이다.부자들이 추위 탈 여지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걸쳤다’고 해 봐야 웃기는 이야기다.

한데 그 당시 경상도 사람들은 “그 여자, 걸쳤나?”라고들 빈정댔다. 경상도에서는 정신 나간 사람보고 ‘미x다’ 또는 ‘걸쳤다’라고 하기때문이다. 옷을 걸친 것뿐이라고 둘러대다가 졸지에 정신 상태를 의심받게 되다니!

누구는 옷으로 남을 웃음거리로 삼고 누구는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해서 세상 만사 제 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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